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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 1항과 3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적십자사의 운영과 회원모집, 회비모금, 기부금 영수증 발급을 위해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자료제공 요청을 받은 국가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그 자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또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시행령 제2조 1호는 적십자사가 요청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에 세대주의 성명과 주소를 포함시키고 있다.
적십자사는 2020년도 적십자회비 모금을 위해 행정안전부에 대한 적십자사 조직법을 근거해 전국의 세대주(만 25세~74세) 성명과 주소를 요청했다. 이에 행정안정부 장관은 2019년 10월 31일 적십자사에 만 25세부터 74세까지 거주자 가운데 세대주 성명과 주소를 총 1766만2388건을 제공했다.
청구인들은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국가 등으로 하여금 적십자사가 요청한 개인정보 등을 제공하도록 한 것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주위적으로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에 대해 예비적으로 대한민국의 적십자사에 대한 자료제공 행위와 적십자사의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 발송행위에 대해 헌법 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특히 적십자법 제8조는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그 제공을 요청하는 목적 필요한 자료의 대상 및 범위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에 규정하지 않고 하위 법령에 백지위임하고 있으므로 법률유보원칙 또는 포괄위임금 지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또 자료제공 조항 가운데 ‘특별한 사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예시나 한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아 법률유보 원칙 또는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필요한 자료’의 구체적인 범위를 미리 법률에 상세하게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어렵다”며 “각종 자료를 보유 관리하고 있는 주체인 국가가 △자료 제공의 목적과 △필요한 자료의 범위 △자료 제공의 용이성 △적십자사의 운영 상황 및 회비모금 실무의 변화 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으므로 그 구체적인 내용을 하위법령에 위임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또 “‘특별한 사유’라는 문언 자체는 비록 불확정적 개념이라 하더라도 개인정보의 목적 외 제3자 제공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는 개인정보 보호법의 취지를 고려해보면 이 사건 자료제공 조항의 ‘특별한 사유’도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에 준하는 경우로서 그 규율 범위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성명’은 사회생활 영역에서 노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정보로서 다른 위험스러운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식별자 역할을 하거나 다른 개인정보들과 결합함으로써 개인의 전체적 부분적 인격상을 추출해 내는 데 사용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언제나 엄격한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국가 등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를 적십자사에 제공함으로써 적십자사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적십자회비 모금을 위한 지로통지서를 전국의 세대주들에게 발송해 회비를 용이하게 모금할 수 있게 된다”며 “이는 적십자사의 안정적인 재원 조달을 가능하게 하고 적십자사가 사업에 전념하는 데에 도움이 되므로 이러한 정보를 적십자사에 제공하는 것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했다.
이선애·문형배 재판관은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 1항의 회비모금에 관한 부분 가운데 ‘성명’에 관한 부분이 청구인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성명이 주소와 함께 제공될 경우 ‘누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돼 결합된 정보의 가치는 훨씬 커지게 되므로 개인정보가 악용되거나 유출됐을 경우의 위험성도 함께 높아진다고 판단해서다.
특히 “시행령조항은 정보제공의 대상이 되는 세대주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있음에 따라 적십자사는 전국의 모든 세대주의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고 그 양은 매우 방대하다”며 “적십자사에 정보 제공함에 있어서 제공된 정보를 철저히 관리하고 정보주체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제한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입법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