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MZ세대의 대립, 예술대학 극작 수업으로 바라보다

장병호 기자I 2022.10.27 06:30:00

두산아트센터 연극 '클래스' 25일 개막
한국 사회의 다층적인 위계 문제 질문
겹겹이 쌓인 이야기 흥미롭게 풀어낸 2인극
'DAC 아티스트' 선정 극작가 진주 신작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영어 단어 ‘클래스’(class)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수업, 그리고 계급이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클래스’(극작 진주, 연출 이인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준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위계 관계에 놓인 두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연극 ‘클래스’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DAC 아티스트’로 선정된 극작가 진주의 신작으로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한다. (사진=두산아트센터)
작품은 예술대학 극작 수업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중견 극작가 A(이주영 분)와 학생 B(정새별 분)다. B는 A의 작품을 좋아해 A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공모전에도 여러 차례 작품을 출품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A는 B가 자신에게 보이는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심드렁할 뿐이다.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던 두 사람의 관계는 A가 졸업을 위해 쓴 희곡 ‘고독한 케이크방’을 가지고 오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고독한 케이크방’은 케이크를 정성껏 만든 뒤 이를 부숴버리는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 ‘나나’의 이야기다. ‘나나’는 어릴 적 성폭력으로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 ‘나나’가 곧 B라는 사실을 알게 된 A는 “삶의 영역과 이야기의 영역은 달라야 한다”고 다그치지만, B는 “왜 그래선 안 되냐”며 오히려 맞선다.

진주 작가에 따르면 A는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이며 B는 “문화적 풍요와 급격한 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개인을 좀 더 중시하는 풍조 속에서 자라”난 인물이다. 흔히 말하는 기성세대와 MZ세대의 표상이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다. 이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경계와 위계의 문제를 다룬다.

작품은 여기에 또 하나의 층위를 더한다. A의 스승인 원로 교수, 그리고 원로 교수를 대신해 소설을 집필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B의 기숙사 룸메이트의 이야기다. 원로 교수와 죽은 학생을 둘러싼 A와 B의 대화는 위계 갈등을 넘어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작품은 2인극임에도 겹겹이 쌓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흥미로운 서사로 풀어낸다.

연극 ‘클래스’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DAC 아티스트’로 선정된 극작가 진주의 신작으로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한다. (사진=두산아트센터)
진주 작가는 이번 작품을 쓰게 된 계기로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을 꼽았다. 그는 “‘미투’ 운동이 예술계와 정치, 학계 여러 방면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며 이 폭력의 본질이 위계에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교실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B는 A에게 ‘미투’ 운동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며 위계로 인한 폭력은 정말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인지를 질문한다. 그러나 A는 B의 이러한 질문에 마땅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작품 또한 어떤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나나’의 성폭력 트라우마도, B의 상처도, A의 죄책감도 깨끗하게 지워지거나 사라지진 않는다. 극작가 진주는 “어떤 상처는 사람을 고립시키고 스스로를 계속해서 상처 입힌다. 다른 이들이 상처 받은 이들에게 침묵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과거를 없던 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상처로부터 일어서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래스’는 그런 시도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두산아트센터가 만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DAC 아티스트’로 선정된 극작가 진주의 신작으로 제작됐다. 다음달 12일까지 공연한다. 오는 30일 공연 이후엔 창작진과 배우, 프로듀서 등이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연극 ‘클래스’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DAC 아티스트’로 선정된 극작가 진주의 신작으로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한다. (사진=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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