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이 장면은 보통 직장인의 일상 업무 일부다. 여기 등장하는 외국어 표현들은 평소 직장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업무 용어들이다. 실제로 한 취업정보업체에서 직장인 546명을 대상으로 ‘회의석상에서의 외국어·외래어 사용’에 대해 설문조사 한 결과, 직장인 51.28%는 ‘외국어·외래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외래어를 자주 쓰는 이유로는 ‘마땅히 대체할 말이 없어서’(30.17%)가 가장 많았고,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서’(20.69%), ‘더 강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18.10%), ‘다른 사람들이 쓰니까 습관적으로’(12.93%), ‘미디어에서 쉽게 접하기 때문’(6.03%) 순으로 나타났다.
10~20대 젊은 층 사이에서의 외국어 남용 사례는 더욱 심각하다. 이미 굳혀져 익숙하고 편한 외래어 표현을 굳이 우리말로 바꿀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어단체 및 언어학계에서는 외래어나 신조어의 이 같은 남용이 자칫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차별, 배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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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원장은 “언어라는 게 소통과 배려다. 쉬운 말은 소통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서 언어는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는 만큼 국민 생활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고 했다.
세종국어문화원에 따르면 언어는 곧 인권이다. 김 원장은 “사람다운 어떤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주어지는 지식, 정보 등이 평등해야 하는데, 국민의 안전과 보건, 나아가 생명과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말(공공언어)이 알아듣기 어려울 때 국민은 위험에 노출되고, 알 권리를 침해당한다. 외국어와 한자 능력에 따라 차별당할 위험에 처한다”고 말했다.
또한 어려운 말은 정책과 사업 내용을 알리는 데에도 장벽이 돼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전 사회적인 비용의 낭비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국어문화원연합회가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연구한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분석’(2021년)에 따르면 공공언어를 개선하면 연간 3375억원의 경제 효과가 나타나고, 시간 비용 절감 효과는 민원 서식 1952억원, 정책 용어 753억원, 약관 및 계약서 79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원 서식에 쓰인 어려운 용어 때문에 우리 국민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만 보면 2010년 약 170억원에서 2021년 약 1952억원으로 11.5배 늘어난 것이다. 때로는 배려하기 위해 선택한 ‘홈리스’(걸인)나 ‘실버’(노인)라는 외국어 차용이 되레 불편한 것을 감추고 차별을 덮어 또 다른 배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공공언어, 국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해주는 공론장의 언어를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 국어문화원연합회가 벌이고 있는 ‘쉬운 우리말 쓰기’ 확산 운동도 국민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김 원장은 “유튜브나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리말인 ‘순화어’보다 외국어나 신조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정보 소외층이나 세대 간 언어의 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며 “어려운 말을 사용하면 그 맥락과 단락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필수적인 정보를 알지 못하게 된다. 외국어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해선 안 된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