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유물 ''보소단인존장''
"어린나이에 재위, 혼란스런 정국에 시름많아"
평소 관심많던 예술·서예로 위안...인장에 주목
생애동안 600~900개 가량 수집해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국립고궁박물관은 최근 6월의 큐레이터 추천 유물로조선 제24대 왕 헌종(재위 1834~1849)의 인간적, 개인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유물 ‘보소단인존장’을 선보였다. ‘보소당인존장’은 인장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헌종이 자신의 인장들을 보관했던 장이다. 장 속에는 마치 책을 입체화 시켜 놓은것 처럼 인장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120cm 높이에 단정한 느낌의 외관을 가진 ‘보소당인종장’에서 인장을 대했던 헌종의 진지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신재근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 국왕의 개인적 취향·생활은 일반적으로 알기 힘든데, ‘보소단인존장’은 헌종의 개인적 취향과 인간적 면모를 알 수 있는 몇 안되는 유물”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 보소당인존장(사진=국립고궁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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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은 8세의 나이에 할아버지 순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조선 임금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이후 23세의 젊은 나이에 죽기까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헌종을 대신에 할머니 순원왕후가 15세까지 수렴청정을 했다. 이때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외척의 세력 다툼이 시작되면서 헌종은 세도 정치의 틈에 끼게 된다. 여기에 각종 자연재해와 천주교 신자 학살, 이양선 출몰 등으로 민란이 일어나는 등 급박한 정세가 이어지며 혼란스러운 정세가 이어졌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정국에 15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에 헌종은 다른 왕들에 비해 역사적으로 알려진바가 크게 없다. 조선의 왕들은 대개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에 의존해 기억되기 때문에 즉위 과정이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릴적부터 예술·서예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헌종은 학자들 사이에서는 ‘미완의 문화군주’라 예술·서예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서화 감상을 좋아해서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돼 있는 동안 그에게 글씨를 써서 올려 보내라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학문과 예술에 남다른 열정을 보인 그는 이를 단순히 즐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를 돌·나무·금속 등에 새긴 인장을 제작·수집했다. 이렇게 모은 인장만 최소 600~900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신 교수는 “헌종의 짧은 생애를 생각했을 때 엄청난 양”이라며 “웬만큼 열정이 있지 않아서는 인장을 하나하나 모으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 나이에 재위해 여러 정치적 시련을 겪으며 문예적 취미로 시름을 잊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연향(硯香, 벼루의 향기)이 새겨진 인장(사진=국립고궁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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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장은 돌·나무·금속·흙 등에 이름·직위 등을 새겨 신분과 신용을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됐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18~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인장은 글씨와 그림, 조각이 집약된 하나의 종합예술로 발전했다. 헌종의 개인용 인장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 꼽힌다. 직접 ‘우천하사(세상 선비와 벗하다)’, ‘연향(벼루의 향기)’, ‘독미견서 여봉양우 독이견서 여우고인(아직 보지 못한 책을 읽으면 좋은 친구를 얻은 것과 같고, 이미 봤던 책을 읽으면 옛 친구를 만난 것 같다)’같은 문구를 인장으로 새겨 보관했다.
애장했던 인장들에는 19세기 조선의 전각예술과 김정희, 옹방강으로 대표되는 조선과 청의 학문적 내용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들 인장을 모은 함이 ‘보소당인존함’이고 이를 한데 묶어 펴낸 책이 ‘보소당인존’이다. ‘보소당인존함’은 두개의 장이 짝을 이루는 형태인데 장의 문을 열면 5개씩 10개의 서랍이 놓여있다. 각 서랍마다 종이로 인장들의 순서와 수량을 꼼꼼히 표시해 둬 헌종의 성격 및 관심을 느낄 수 있다.
안타깝게도 헌종이 아꼈던 인장들은 경복궁 화재 등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현재 남아 있는 인장 상당수도 헌종이 죽은 후 고종때 ‘보소당인존’등을 활용해 만든 복각본이다. 이같은 ‘보소당인존장’과 헌종의 인장들은 박물관 궁중서화실에서 6월 동안 실물로 볼 수 있다.
| 우천하사(友天下士, 세상의 선비와 벗하다)가 새겨진 헌종의 인장(사진=국립고궁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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