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핵심 노동정책 중 하나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과정에서 과거 공공부문 일자리 통계가 부풀려지면서 발생한 기저효과도 영향을 미쳤다. 일부 기관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신규채용으로 집계한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고용시장 한파가 길어질 것이란 판단 아래 공공부문에서 채용을 늘려 온기를 불어 넣는다는 방침이나 채용 여력을 소진한 공공기관들이 적지 않아 난관이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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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가 12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지난해 공공기관 360곳의 신규 채용(일반 정규직 기준)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급증했던 공공기관 일반 정규직 신규 채용 규모가 지난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 3만 3130.36명(시간선택제 포함 소수점 표시)이던 신규채용 규모는 지난해 2만 7309.76명으로 1년 만에 17.6%(5820.6명)가 급감했다. 지난해 청년 인턴(체험형+채용형) 채용 규모도 2만917.63명으로 전년(2만1531.55명)대비 2.9%(613.92명) 줄었다.
공공부문이 사상 최악의 고용빙하기 때 제 역할을 못한 원인 중 하나가 문재인 정부 초기 시행했던 공공기관 자율정원조정제도다. 자율정원 조정제도는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승인 없이도 공공기관이 정규직 채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당초 2018년부터 3년간 운영할 방침이었지만, 공공기관 비대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난해 조기 폐지됐다.
이에 일부 공공기관은 정원이 급감해 채용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19년 1550명이던 청년 인턴 채용 규모가 지난해 972명으로 37.3%(578명) 줄어 340개 기관중 감소폭이 가장 컸다. LH는 일반 정규직 신규채용도 2019년 664명에서 지난해 360명으로 304명 줄었는데 정원이 축소된 영향이 크다.
LH 관계자는 “정원 증가폭이 축소된데다 퇴직자 수도 줄어든 탓에 신규채용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정규직 신규채용 규모가 전년 대비 392명 줄어 공공기관 중 두 번째로 감소폭이 컸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도 마찬가지다. 문케어 시행으로 업무량이 급증한 심펑원은 2019년 정원이 297명 늘었지만 작년엔 91명 증가에 그쳤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환경공단 등도 정원제한에 걸려 신규채용 규모를 줄였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집권한 뒤 일자리는 정부가 만든다며 공공부문 일자리를 너무 빨리 늘렸다”며 “문제는 늘어난 공공일자리와 그로 인한 확대된 대국민 서비스의 비용 대비 성과가 너무 적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특히 초반에 일자리를 급격히 늘리면서 코로나로 공공일자리가 진짜 필요할 때는 쉽게 늘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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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으로 일자리통계가 부풀려진 영향도 있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힘입어 2018년과 2019년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당시 비정규직 인원이 정규직 채용 실적으로 잡히며 채용 규모가 늘어났다가 전환이 마무리되자 일자리 통계 거품이 빠졌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달성률은 목표 대비 97.3%에 달한다.
신규채용 규모가 전년대비 50.5%(2000.5명) 줄어 감소폭이 가장 큰 곳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다.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2019년에는 비정규직 전환 1466명과 신규노선 개통에 따른 운영 인력 803명 채용인원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철도공사는 정규직 전환대상자 6680명 중 총 528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정규직 신규채용 규모가 전년 대비 328명이 줄어 감소폭이 세 번째로 컸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2019년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대폭 전환되면서 일부가 정규직 신규 채용으로 잡혀 규모가 늘었다”며 “정규직 전환이 적었던 2018년과 비교하면 신규 채용이 크게 감소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규직 신규 채용 규모가 전년 대비 327명이 줄어든 한전KPS(주)이나 290명이 줄어든 한국공항공사도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2019년도 채용규모가 이례적으로 늘어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공공기관 채용이 줄어 2030세대가 불이익을 볼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자 인건비는 기존의 기간제 인건비, 용역 사업비 등을 활용하고 있다”며 “처우개선 소요 비용은 용역업체 이윤·관리비 등 절감 재원을 활용해 추가 재정부담을 최소화하고 있어 정규직화가 신규채용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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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채용 규모를 줄인 공공기관도 있다. 그랜드코리아레저는 2019년 대비 지난해 청년 인턴 채용을 265명 줄었다.
그랜드코리아레저 관계자는 “외국인 대상으로 카지노를 운영하기 때문에 지난해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웠다”며 “지난해 카지노가 200일 가량 영업을 못해 매출이 전혀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청년 인턴 채용 규모가 186명이 줄어든 강원랜드 관계자도 “지난해 정상영업을 한 일수는 53일에 불과했다”며 “직원들도 장기간 휴직을 하고 다른 기관으로 파견을 보내는 상황에서 채용을 늘리긴 어려웠다”고 전했다.
청년 인턴 채용 규모가 142.8명 줄어든 한국마사회 관계자도 “지난해 2월 23일부터 경마가 중단되면서 4000억원대의 적자가 났다”며 “기존 직원도 임금 삭감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무관중 경기로 인한 상금까지 자체 재원으로 지급해 손실이 컸다”고 토로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부산대학교병원 등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신규 채용 규모를 줄였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일자리가 널뛰기한다는 건 그만큼 인력 증원에 대한 원칙이 부실하다는 뜻”이라며 “공공기관이 사기업처럼 사람을 더 뽑는다고 해서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 기대하기 힘든 만큼, 필요한 일자리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정확하게 평가하는 등 원칙에 입각한 인력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