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작가·반체제 소설가, 美·中 전체주의 비판에 펜을 들다

이윤정 기자I 2020.03.25 00:30:00

''증언들'' ''작렬지'' 잇달아 출간
애트우드 "트럼프 미국, 여성의 권리 퇴보시켜"
옌렌커 "중국, 황당·무질서한 일들 연속 발생"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동쪽에서 태양이 떠올라야 할 시간인데도 해는 나오지 않고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검은 연무가 하늘을 뒤덮었다. 30년 뒤 겨우 스모그가 걷혔을 때, 자례에서는 더 이상 새나 곤충을 찾아볼 수 없었다.’(‘작렬지’)

‘길리어드는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지상에 세워진 하느님 왕국이라기에는 창피스러우리만큼 이민율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시녀의 유출이라든가. 몰래 빠져나가는 시녀들이 너무 많다.’(‘증언들’)

캐나다와 중국의 거장 소설가가 ‘전체주의’(강력한 국가권력이 국민생활을 간섭·통제하는 사상이나 체제)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책으로 한국 독자를 찾아왔다. ‘2019 부커상’ 수상작인 마거릿 애트우드(81)의 ‘증언들’(황금가지)과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중국의 반체제 소설가 옌렌커(61)의 ‘작렬지’(자음과모음)가 잇달아 출간됐다.

‘증언들’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가상의 정권 길리어드를 통해 미국의 전체주의를, ‘작렬지’는 쿵씨와 주씨 집안의 분투, 치욕의 역사를 통해 중국의 전체주의를 각각 비판했다. 두 소설 모두 분량이 6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옌렌커는 “오늘날 중국은 짧은 시간 내에 유럽과 미국의 역사 단계를 추월하려 하면서 황당하고 무질서한 일들이 연계되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트우드는 “집권 과정에서 한 약속을 어기는 전체주의는 내부로부터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왼쪽)와 중국 작가 옌렌커(사진=연합뉴스).


◇길리어드 정권의 몰락…‘증언들’

‘증언들’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교본으로 꼽히는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1985)의 후속작으로, 15년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녀 이야기’는 가상의 미국 정권을 무대로 성과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스테디셀러로 1000만 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애트우드의 대표작으로는 ‘고양이 눈’(1988) ‘인간 종말 리포트’(2003) ‘미친 아담’(2013) 등이 있다. 2000년 발표한 ‘눈먼 암살자’로 이미 한 차례 ‘맨부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세계3대 문학상으로 일컬어지는 ‘부커상’은 2018년까지 ‘맨부커상’이었다가 지난해부터 맨그룹이 후원을 중단하면서 본래 이름인 ‘부커상’으로 개명됐다.

‘증언들’의 배경은 기독교 근본의 국가 길리어드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철저히 재생산 도구로 전락하며 인권을 박탈당한다. 각기 다른 환경과 직업을 가진 아그네스, 리디아, 데이지 등 세 여성들의 증언을 통해 길리어드 정권의 몰락 과정을 다루고 있다.

최근 국내 언론사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애트우드는 “미국은 이미 길리어드의 근간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다. 많은 주에서 최선을 다해 여성의 권리를 퇴보시키고 있다”며 “‘미국이 전체주의로 나아간다면 어떤 모습의 국가가 될 것인가’를 사람들이 자문해보길 바랐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애트우드는 사회 격변과 혼돈의 시기에는 전체주의 정부들이 득세한다고 봤다. 그는 “화재와 홍수 등으로 발현되는 기후 위기는 곧 식량 부족, 불안, 공포, 자원 전쟁 등을 의미한다”며 “상황이 불안정해질수록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길리어드’ 같은 전체주의 국가로 변모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중국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작렬지’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옌렌커는 중국의 체제 비판에 목소리를 내 온 작가다.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서’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의 뒤안길에 드리운 어두운 면을 과감히 파헤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향하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5개국 매체에 기고문을 보내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해 중국 당국을 비난하고 나선 것에서도 그의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일 발간된 계간지 ‘대산문화’에서 옌렌커는 “우리는 이 질병으로 인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중국 역사에서 국가와 집단의 기억은 항상 우리 개인의 기억을 가리고 왜곡시켜 왔다”고 지적했다.

‘작렬지’는 2013년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비판 의식을 담았다. ‘자례’라는 허구의 마을이 점차 대도시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공동체 내에서 파벌 만들기와 복수가 난무하며 벽촌에서 신흥도시로 급성장한 지역은 폐허로 변해간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이든 ‘그 길은 발전과 부귀, 영웅과 승리자로 나아가는 지혜의 계단’으로 받아들여지는 중국 현실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쿵밍량과 주잉의 부정선거, 도둑질과 매춘을 자처하는 주민 등은 윤리가 몰락한 욕망의 풍경을 고스란히 내비친다. 체제 비판이 노골적이어서 이번에도 금서 지정을 우려했지만, 중국 내에서 15만부가 팔려나가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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