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의 키워드]'그린북'이 경고하는 한국 수출 적신호

김보영 기자I 2019.02.17 06:00:54

최근 경제동향보고서...美 ''베이지북'' 빗대
수출 부진 공식화 이례적
미중 무역갈등·브렉시트·반도체 수출감소 때문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로 한 주 간 수많은 정보들이 홍수처럼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아울러 빠르게 변하는 세태를 반영한 시사 용어와 신조어들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죠. 스냅타임에서 한 주를 강타한 사건과 사고, 이슈들을 집약한 키워드와 신조어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주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일요일 하나의 키워드를 한 주 간 발생한 이슈들과 엮어 소개해보려 합니다.

영화 그린북의 한 장면. (사진=CGV 아트하우스)


영화 '그린북(Green Book)'은 인종차별이 합법적으로 이뤄지던 1960년대 미국 남부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는 백악관을 무대로 누비는 유명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러나 흑인이란 이유로 공연장 화장실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고 백인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과 호텔의 출입도 거부당하죠.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유함과 관계 없이 흑인들이라면 유색인종 전용 숙박시설과 음식점을 이용해야만 합니다.
흑인 우체부 빅터 휴고 그린은 인종 때문에 제대로 출장 업무나 관광 등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린북'이란 것을 만듭니다. 가게나 숙박업소 앞에서 문전박대당하지 않게 유색인종 전용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을 모아 소개한 여행 가이드북이죠.
이 영화는 음반 회사 직원들을 통해 그린북을 건네 받은 돈 셜리와 그의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가 함께 남부 투어 여정을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기획재정부에서 15일 2019년 1월 그린북을 발표하면서 불확실한 국내 경제 동향과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 그린북이 흑인들을 위한 여행 안내 책자였다면, 기재부의 그린북은 매달 우리나라 경제 상황과 전망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경제 안내 책자'에 가깝습니다.
그린북의 개념과 유래, 이번에 발표한 그린북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고 왜 이런 전망을 내놨는지 등을 관련 이슈, 사건과 엮어 알기 쉽게 정리해보았습니다.

기획재정부가 매달 발간하는 최근경제동향(그린북). (사진=기획재정부)


◇대한민국 경제 분야별 안내 책자 '그린북'

최근 경제동향, 일명 '그린북'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린북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기 전 매월 기재부가 발간하는 경제 동향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민간 소비 △설비 투자 △건설 투자 △수출입 △산업 생산 △서비스업 등 분야별 항목에 관한 동향을 분석해 발표한 것으로 2005년 3월에 처음 발행을 시작했죠.
그린북이란 별명은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매달 발표하는 경제 동향 보고서를 '베이지북'(Beige Book)이라고 부르는 것에 착안한 것으로, 표지가 초록색이어서 붙여졌습니다.
이날 발표한 그린북에서 기재부는 "투자와 수출이 조정을 받는 모습"이라며 수출 상황과 관련한 우려 섞인 진단을 내놨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수출 상황을 4개월 연속 '건조한 흐름'이라는 문구로 표현해왔지만 이달 들어 평가가 바뀐 것이죠.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한 수출액이 지난해 12월 1.3%, 지난달 5.8% 감소해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점을 반영했다는 분석입니다. 자동차·철강·일반기계 등 분야에서의 수출액은 늘었으나 무선통신기기·컴퓨터·반도체 분야 등에서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홍민석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주요산업 생산 변화와 경기 예측 지표, 고용 등은 경제 상황 판단에서 부정적이나 4분기 성장률 실적 등 긍적적인 요인도 있다"고 하면서도 수출에 관해서는 "현재 조정을 받고 있어 걱정거리가 늘어난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과 브렉시트, 반도체 업황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美·中 갈등, 국내 수출 부진·경제 불확실 주범

한은에서도 지난해부터 지속 중인 미·중 무역갈등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은은 지난 14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2019년 2월)에서 "두 나라 간 갈등에는 통상, 외교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 장기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양국 간 무역갈등이 일부 완화되는 조짐은 보이고 있으나 불확실성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중 양 측은 내달 1일로 예정된 무역협상 시한을 60일 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2일(현지 시간)로 예고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 시점을 60일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협상 시한 연장 가능성을 시사한 적은 있으나 '60일'이라는 구체적 기간까지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양측이 이처럼 무역협상을 결렬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최근 미국과 중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2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6.6%를 기록한 것이 이를 보여줍니다. 미국도 35일간의 셧다운 사태로 국가부채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양국의 무역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은 위태롭습니다. 미국은 차세대 이동통신(5G)과 관련해 유럽 동맹국들에 보안을 이유로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보이콧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5일~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를 앞두고 화웨이 장비 사용금지 행정명령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사실상 전세계를 상대로 반(反) 화웨이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죠.
유럽 이동통신업계는 값싸고 성능도 좋은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 시 5G 기술에서 뒤쳐질 가능성이 있어 이에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이통업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AP)


◇노딜 브렉시트 강행할까...국내 자동차 산업 타격

영국의 노 딜(No Deal)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강행 여부도 우리 경제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일간 가디언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 정부 계획안이 찬성258표, 반대 303표로 부결돼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앞서 영국과 EU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국경에서 통행·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을 피하고자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남는 백스톱 안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정부 결의안이 EU와 아무런 협정을 맺지 않고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를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기권을 택했죠.
이는 메이 총리 취임 뒤 하원에서의 10번째 패배입니다. 당분간 영국은 합의안을 재협상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대로는 노 딜 브렉시트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모든 국가들이 영국과 원활히 무역을 할 수 없게 되죠. 이렇게 되면 영국산 제품 가격 상승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까지 무관세로 수출하던 승용차에 10% 관세가 붙게 됩니다.

◇세계경기둔화·무역갈등, 반도체 수출 악영향

한편 그린북에서는 지난달에 이어 이번에도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을 또 한 번 언급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한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12월 8.3% 감소했고 지난 달에는 3배 가까이 늘어난 23.3%나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반도체 단가하락 등으로 국내 주력품목 수출이 급감하는 것에 더해 세계경기의 전반적 둔화와 미·중 무역분쟁까지 가세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를 두고 "지난 2년 간 탄탄했던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둔화하고 있고 위험은 커지고 있다"며 "글로벌 성장세의 급격한 하강 위험은 분명 증가했다"고 경고했습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세계경기가 악화하면서 교역이 줄어들어 주요국 수출이 감소세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나라는 내수도 좋지 않은데 수출까지 빠져버리면 성장률이 더욱 떨어지면서 복합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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