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바이오]②궁지몰린 바이오산업…안팎으로 '적신호'

김지섭 기자I 2018.11.16 02:00:00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논란에 ''휘청, 생산계약 악영향 우려
"정부가 나서 바이오산업 신뢰 깎아, 글로벌 경쟁력 악화 우려"
휴미라 가격 최대 80% 인하, 바이오시밀러 ''레드오션'' 우려
첨단바이오의약품법 국회 문턱 못넘어, 신약 약가 우대도 역주행

[이데일리 김지섭 기자] 반도체 등을 잇는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국내 바이오산업이 사면초가에 내몰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 바이오기업들은 분식회계 논란과 실적 악화 등에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여기에 이들 기업이 주력하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의 글로벌 경쟁도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날부터 주식 거래정지에 들어갔다. 이는 지난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대상으로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리고, 김태한 대표 해임과 함께 80억원의 과징금 등 제재 조치를 내린데 따른 것이다. 이번 조치로 연간 36만ℓ 규모로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세가 자칫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거래처들이 회계부정 등 윤리적인 측면을 문제 삼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등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 국내 바이오산업에 대한 대외적인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상황”이라며 “연간 28만ℓ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을 갖춘 스위스 론자도 생산시설 확대를 검토 중인 상황인데,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국내에서 여러 논란에 발목이 잡힐 경우 글로벌 바이오산업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오시밀러 경쟁도 점점 심화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선도적으로 개척한 분야다. 특히 셀트리온은 ‘바이오의약품은 구조가 복잡해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업계 통념을 뒤집고, 2012년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를 출시하며 관심을 모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5년 류머티즘관절염 치료제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인 ‘베네팔리’를 시작으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 ‘플릭사비’, ‘란투스’ 바이오시밀러 ‘루수두나’,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임랄디’ 등 총 4종의 바이오시밀러를 출시, 업계에서 가장 많은 제품군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램시마 성공을 지켜 본 글로벌 제약사들이 이후 바이오시밀러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을 갖고 있는 업체도 가격을 낮추는 특단의 조치로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을 견제하면서 시장은 점점 ‘레드오션’이 되고 있다. 미국 애브비가 연간 20조원 매출을 거두는 전 세계 1위 바이오의약품 ‘휴미라’ 가격을 지역에 따라 최대 80%까지 낮추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휴미라와 같은 성분의 바이오시밀러를 출시하려던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암젠, 산도즈 등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게 됐다.

유럽에서의 경쟁 심화로 램시마 가격이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시장점유율 확대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바이오시밀러는 복제약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어느 정도 점유율을 달성하면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해마다 가격 조정이 이뤄지고 매년 역성장하는데, 이 점이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바이오기업들이 올 3분기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낸 것도 국내 바이오산업에 대한 적신호로 보여진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48.8%나 줄어든 105억원에 그쳤고, 셀트리온 역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44.2% 줄어든 736억원에 머물렀다. 공장 정비에 따른 가동률 하락도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바이오시밀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급단가를 낮춘 이유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의 ‘제약·바이오 기업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지침(테마감리)에 따른 R&D(연구·개발) 비용 증가도 수익성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기존에는 무형자산으로 인식하던 것을 R&D 비용으로 처리하면서 바이오 업계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주요 바이오업체의 매출액 대비 자산화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35~88%에서 올해 반기말 기준 0~81%로 줄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테마감리는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그동안 업계가 고의적으로 자산을 부풀렸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줬다”고 언급했다.

정책적인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바이오의약품 관리와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이명수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첨단바이오의약품법)’은 아직 국회 문턱에서 머무르고 있다. 국산 신약 육성을 위한 ‘신약 약가 우대제도’ 역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영향으로 제 구실을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신약개발 의지를 꺾는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은 이제 막 해외로 나아가는 단계인데 지원과 규제 완화가 이어져야 할 시기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등이 해외에서 자리 잡고 바이오벤처에 투자도 이뤄지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인천 연수구 송도 셀트리온에서 이 회사 연구원이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사진=셀트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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