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개봉 전 예매를 통해 흥행의 첫 스코어가 결정된다. 이변이 없는 한 개봉 전날 예매율 1위는 개봉 날 박스오피스 1위로 직행한다. 영화의 흥행과 극장매출, 관객의 선택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예매율을 영화진흥위원회는 통합전산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예매율은 증시의 동시호가처럼 시장원리에 따른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한국 극장가는 그야말로 헐리웃의 독무대다. 최근 개봉한 미이라, 트랜스포머, 스파이더맨은 모두 국내 1위 영화체인 CGV에서 개봉 전 예매율이 80%를 훌쩍 넘었다. 지난해말 기준 전체 한국 스크린수는 2575개인데 스파이더맨은 개봉 첫날인 5일 1703개, 트랜스포머는 1739개, 미이라는 1257개 스크린에 걸렸다. 미국에서 형편없는 평점으로 비판을 받은 미이라는 한국에서 개봉일 87만3079명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의 영화사를 바꿨다.
이쯤 되면 영화 예매율이 과연 관객들의 수요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헐리웃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은 길게는 20여일 전후부터 예매관이 열리고, 어지간한 중소 한국영화들은 개봉을 코앞에 두고 순차적으로 열린다. 예매율이 관객의 수요를 반영한다기보다는, 극장이 열어놓은 예매창구에 관객이 쏠리는 식이다.
예매를 하고 싶어도 오픈이 안 돼 못하는 관객들, 개봉해도 조조나 심야에 ‘퐁당퐁당’식으로 걸려 못 보는 관객들의 수요는 어디에 반영돼 있을까. 스크린독과점의 원인이 시장에 있다고 한다면, 관객의 수요는 상당부분 배제된 시각이다. 스크린독과점이 초래하는 문제는 결국 한국 영화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2004년 이후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평균 52.6%인데 올해 현재 한국영화 점유율은 41.7%로 연간기준 최저수준이다. 헐리웃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줬지만, 증권가는 CGV가 2분기 2004년 상장이후 처음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제작사도, 배급사도, 극장도 돈을 못 벌고 결국엔 헐리웃 자본만 돈을 버는 ‘마이너스섬’ 게임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달 말 문화체육관광부는 수직계열화와 스크린독과점 개선을 위해 ‘영화산업 독과점 개선방안 간담회’를 열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도 영화산업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스크린독과점이 시장원리에 의한 것이 아닌 것처럼, 스크린독과점을 해소하자는 움직임을 멀쩡한 시장에 개입하자는 식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 이미 공급자의 입김이 좌우하는 시장에 수요자인 관객의 선택폭을 늘려주는 방향으로 개입한다면 훨씬 시장주의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 역사는 가진 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라면, 문학은 못 가진 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란 말이 있다. 자본에 의해 유명 배우, 검증된 감독이 모여 짜깁기 오락영화를 양산하는 한국영화의 경쟁력에 대한 문제제기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영화가 제조업처럼 전문가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관리 감독한다고 될 일일까. 지금의 한국영화를 산업으로 일군 건 지금 거장으로 불리는 창작자들의 도발적인 상상력 때문 아닐까. 물론 극장이 이윤추구를 위해 상영관을 편성하는 건 자유로운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개봉일 예매율과 박스오피스를 영화와 관객의 ‘시장원리’라는 식의 접근만큼은 사양하고 싶다. 미국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제작된 옥자의 개봉일 스크린 수는 94개. 실시간 예매율은 2위까지 올랐지만, 스크린은 트랜스포머의 5.4%에 불과했다. 옥자는 한국 영화시장에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관객들의 선택권은 어디로 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