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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가]①쉼없이 공부하고 결단하라..'책스승' 리콴유 가르침이죠

이승현 기자I 2016.07.13 05:30:00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애독서 '리콴유 자서전'
경영 배우기 위해 책읽기 시작
독서로 다진 깊이 있는 사고
건설사업관리 1위기업 밑거름
직원도 매달 2권 독후감 필수
독서토론·저자특강 자리 마련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독서하는 회사는 달라요. 구성원들이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훈련을 하다보니 내공이 쌓이게 되죠. 10년 이상 독서 경영을 하다보니 사고의 패턴과 깊이가 달라지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국내 1위 건설사업관리(CM) 기업인 한미글로벌의 김종훈 회장은 초고층 빌딩 전문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본인 스스로 책을 많이 읽을 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독서 경영’을 하는 그야말로 독서 전도사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독서 경영’으로 유명한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이 집무실에 있는 책장 앞에서 자신의 독서 철학을 기술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의 서재는 독서광답게 책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 책으로 둘러싸인 ‘독서광’의 서재

얼마 전 김 회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집무실은 독서광이란 별명에 걸맞게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집무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한 책장은 물론이고 그의 책상과 창틀에까지 자리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책이 쌓여 있다.

“책 욕심만 많아서 이렇게 쌓아 두고 시간이 없어서 다 못봐요. 직접 사는 것도 있고 여기저기서 읽어보라고 선물을 주는 것도 많은데 다 읽지 못해서 죄스럽죠. 그래도 책을 손에서 안 놓고 있어요.”

워낙 책을 정독하는 스타일이라 다독하진 못한다. 매일 틈 날 때마다 책을 읽어 한달에 서너권 정도 독파한다. 그러다보니 항상 책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이런 독서 갈증을 해소하는 때가 5년마다 한번씩 그에게 찾아온다. 한미글로벌은 창업 때부터 임원은 5년, 직원은 10년에 한번씩 두달간 유급 안식 휴가를 주고 있다. 이 때가 바로 책을 몰아서 읽는 기회다.

올해 초 김 회장은 두달간 안식 휴가를 다녀왔다.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책을 싸들고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처음 목표는 하루에 두 권씩 읽는 것이었는데 한 권 반 정도씩 50권을 읽고 왔어요.” 그때를 얘기하는 김 회장의 얼굴엔 사탕을 얻은 소년 같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가 책읽기를 시작한 것은 한미글로벌을 창업하면서부터다. “직장생활할 때까지만 해도 책은 거의 안 봤어요. 그런데 회사 창업하고 나니 경영에 대해 알아야겠는데 방법이 책을 읽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처음엔 경영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책 읽기에 재미가 붙으니까 고전도 보고 인문학도 보고 손 가는 대로 읽게 됐어요.”

◇2003년부터 독서 경영 도입

김 회장은 자신이 독서의 재미에 푹 빠질 무렵인 2003년, 회사에도 독서 경영을 도입했다. 독서 경영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없다. 전 임직원이 현장별로 조를 짜서 독서그룹을 만들고 각 그룹에서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회사에서 책을 사주고 직원들은 책을 읽고 사내 통신망에 독후감을 올리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참여율이 저조했어요. 저도 직장생활할 때 그랬지만 어디 책 읽는 게 쉬운가요. 게다가 독후감까지 내라고 하니 반발이 컸어요. 할 수 없이 책읽기와 독후감 제출을 의무화했죠. 독후감 안 내는 직원에게는 제가 직접 독촉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서서히 정착되더라고요.”

물론 단순히 강제적인 방법만 동원한 건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설득했다. 독서 방법도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 개선했다. 처음에는 회사가 책을 사서 나눠주던 것을 2005년부터는 지정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연간 15만원 한도에서 도서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고, 2009년부터는 지원금을 20만원으로 늘렸다.

대신 최소한 달마다 2권 이상의 책을 보도록 했다. 한권은 전체 임직원이 공통으로 보는 것이고, 나머지 한권은 개인이 고른다. 매달 우수독후감 11편을 뽑아서 시상도 하고 있다. 또 임원들은 솔선수범 차원에서 한달에 한번씩 독서토론을 벌인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책의 저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 ‘저자 특강’ 시간도 갖고 있다.

“우리 회사에서 독서는 문화가 아니라 경영이에요. 유수의 건설사들을 상대로 건설사업관리(CM)를 해야 하는 우리 회사의 특성상 개개인이 뛰어나지 않으면 인정을 받기 어려워요. 학교에서 배운 지식, 현장에서 얻은 경험만으로는 부족해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독서 경영을 하는 겁니다.”

◇“책은 인생의 스승, 서재는 삶이 재창조되는 곳”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김 회장을 사로잡은 책은 무엇일까? 그는 이 질문에 “기억에 남는 책이 많다보니 딱 한권만 고르는 것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읽는 책마다 전해주는 메시지와 느껴지는 감동이 다른데 우열을 가릴 수 있겠냐는 말이다. 우문현답이다. 그래도 어렵사리 몇 권을 골라냈다.

그런데 첫번째로 소개한 책이 의외였다. 유명한 경영학이나 인문학 서적으로 꺼낼 줄 알았는데 미국의 철학자인 헬런 니어링의 회고록인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꼽았다. 헬렌 니어링은 남편 스코트 니어링과 함께 귀농해 채식주의를 평생 실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기업을 경영하는 김 회장이 이 책을 골랐다는 자체가 신선했다. “이 책은 헬렌 니어링이 87세가 됐을 때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스코트 니어링과의 사랑 이야기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쓴 책이에요. 삶과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지요. 그들의 삶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다음으로 꺼내든 책은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가 지은 ‘리콴유 자서전’과 ‘내가 걸어온 일류 국가의 길’이다. “두 권을 합치면 1600여쪽이 돼요. 책을 사놓고 엄두가 나질 않아서 밀어두다가 2006년 안식휴가 때 독파를 했어요. 회사를 경영하는데 큰 힘이 됐던 책이에요.” 리콴유는 26년간 총리로 재직하면서 부패과 빈곤, 폭력 등 혼동 속에 있던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정의롭고 깨끗한 부국으로 만든 위대한 지도자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리콴유의 모습을 통해 지도자의 표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김 회장이 끊임없이 독서하는 이유도 이런 모습을 본받고자 하는 그의 결단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책을 읽으면 나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깨닫게 됩니다. 책은 제 인생의 스승입니다. 그래고 서재는 내 삶이 재창조되는 곳이지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을 배울 수 있어요. 이런 책을 어떻게 손에서 놓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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