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재무상담사] "볕이 안 드는 반지하, 이런 데서 아기 낳고 싶지 않아요."
서른 두 살의 김재성·이효진 씨 동갑내기 부부. 결혼한 지 두 달이지만 신혼여행의 기쁨도 잠시였다. 그 부부가사는 곳은 서울 변두리에 얻은 보증금 5000만원의 반지하 전세다. 그마저 전세대출로 2500만원을 받았다. 맞벌이로 둘이 버는 소득은 월 320만원이다. 버는 돈으로 전세금을 갚아야 할지, 적금을 들어야 할지 헷갈린다고 했다. 남편은 1년 뒤에 아기를 갖고 싶어 했지만 아내 생각은 달랐다. 대출받은 돈을 갚는다 해도 2년마다 전세금이 올라 그 돈을 마련해야 하니 아기 갖기가 막막했다. 자산도 없고, 소득도 적다보니 마음까지 위축됐다. 행복해야 할 신혼 두 달 동안 두 사람은 돈 문제로 몇 번 다투기까지 했다고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예요."
먹먹한 분위기 속에 상담사가 내놓은 첫 한마디였다. 서로를 알고 사랑해 결혼했다면 현실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현실이 힘들다고 외면한다면 두 사람의 사이는 더 틀어질 수밖에 없다. 상담사는 이들에게 불안해만 보이는 그들의 `터널`이 어떻게 될 지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수치와 원칙을 갖고 재무적인 흐름을 풀어보는 과정이었다.
◇ 2년뒤 전세 옮겨가기 프로젝트
이 가정의 핵심은 전세 대출을 꾸준히 갚아 부채 수준을 적정하게 낮추면서 적금도 따로 불입해 `돈을 준비한 만큼` 전세를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맞벌이로 돈을 벌어 조금이나마 경제적안정을 이뤄 임신을 계획하는 것이었다.
은행의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 대출은 만기상환 방식이다. 월 8만원 이자만 내다가 대출액 2500만원의 20%인 500만원을 전세 만기인 내후년 봄에 갚아야 했다. 하지만 신혼 때 얻은 전세자금 대출은 최대 8년으로 상환 기간을 잡고 원리금 상환 계획을 세워 매달 갚는 게 낫다. 2년마다 총 3번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이자만 내는 것보다 낫단 얘기다.
이 씨 부부는 원래 기준대로라면 2년 동안 이자만 200만원을 낸다. 돈을 모아 대출 원금을 갚을 생각으로 연 4%의 적금을 붓는다면 2년간 받는 이자는 18만원(세후수익 연 1.8%)밖에 되지 않는다. 이자만큼 저축하지 못하는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아도 180만원 이상 손해다. 재성 씨 부부는 이자 8만원에 원금 22만원을 합쳐 매달 30만원을 무조건 `조기상환` 하기로 했다. 은행 창구에 가서 갚거나 인터넷뱅킹을 이용해 미리 갚으면 된다.
전세자금대출은 장기적인 상환계획을 잡고 갚아나가도 전세금 준비는 따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적금을 드는 게 맞다. 매월 80만원씩 2년간 저축한다면 2000만원 정도가 마련된다. 그렇게 되면 2년 후 현재 보증금 5000만원에 적금을 보태어 7000만원 정도에 맞춰 전세를 옮겨 갈 수 있게 된다. 전세대출은 원금을 550만원 갚아 2000만원 미만으로 줄 것이다. 전세금이 올라가도 전세대출은 30% 수준 아래로 줄여가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가정의 상황에 따라 `금액`에 맞춰 전세를 옮겨가는 것이다. 오르는 전세금만큼 계속 대출을 받을 수는 없다.
◇ 불안하면 `그 다음`을 보라
이 가정은 서울 시내에 거주하기에 장기전세(쉬프트) 등 임대주택 신혼부부 우선공급에 선정될 수 있다. 결혼 3년 이내에 자녀를 임신, 출산 한 경우에 1순위가 된다. 2년차가 되는 내년 중순부터 임신을 계획한다면 좋을 것이다. 1억원 초반의 소형 임대에 선정돼도 지금처럼 저축해 나간다면 30% 내외로 적당하게 임대보증금 대출을 새로 받을 수도 있다.
◇ 月생활비의 2배 이상은 비축해 둬야
고물가와 전세난으로 살아가기 힘들지만 안정적인 계획 속에 임신시기를 정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출산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성 씨 부부도 2년간 재정적인 안정을 위해 맞벌이에 집중해 우선순위를 전세금 마련으로 정했다. 또한 매월 20만원씩은 출산예비자금으로 적금을 붓기로 했다. 2년 뒤 500만원 정도가 모아지면 출산 시기에 맞춰 조리원, 아기용품 구입 등으로 쓸 것이다.
결혼식을 치르고 남은 500만원은 CMA통장에 넣어 저수지통장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월 생활비의 두 배 이상은 비축해 두어야 긴급할 때 쓸 수 있다. 또한 매월 안정적으로 저축할 수 있고 원금도 상환할 수 있다. 쓸 데 쓰더라도 저축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 연봉보다 중요한게 `순자산`
재성 씨는 월 생활비에 비정기 지출까지 포함해 150만원 정도로 알뜰하게 살림하기로 했다. 맞벌이 소득에서 170만원 정도가 남아 이중 30만원을 전세대출 원리금으로 쓰기로 했다. 소득에서 전세금을 갚는 원금도 저축이다. 남편 소득의 10%는 노후 자금으로 쓰기로 하고 아내 앞으로 저금을 시작했다. 적립식 펀드도 둘째 출산 후 쉬어갈 때를 대비해 15만 원부터 시작했다. 첫째 낳고 복직하는 때부터는 펀드를 올려 대학 자금도 준비하기로 했다. 2년뒤로 예상하는 임신 휴직기를 지나 4년후 이 가정의 순자산은 9000만원이 된다. 저축과 대출원금상환을 통해 6000만원을 올려 놓게 된다.
배우자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가계 `순자산`이다. 순자산이 늘어날때 가정이 행복해진다. 무리하게 전세대출을 쓰거나 할부로 자동차를 산다면 `허니문 푸어`는 지속된다. 빚을 권하는 소비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하다.
◇ 자존감을 높여가는 신혼부부
연애는 감정이지만 결혼은 현실을 넘어 `책임`의 영역이 된다. 그 책임에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인 안정도 있다. 결혼하고 나면 돈 쓸 곳이 더 많이 늘어난다. 가정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함께 정한 우선순위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비슷한 말이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자존심은 남과 비교당하기 싫고 상처받기 쉽지만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괜한 신경 쓰지 않는다.
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소박한 삶을 당당하게 여기는 신혼부부가 아름답다. 경제력이 높지 않아도 꿈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는 소박한 가정을 응원한다. 그런 가정은 경제력보다 중요한 `경쟁력`을 갖춘 부부임에 틀림없다.
돈걱정없는 신혼부부 저자 fxpark@tnvadvisors.com
정리= 문영재 기자 jtopi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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