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 공급 후유증에 가까스로 버티던 주택시장이 정부의 버블론 제기 이후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게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늘어나는 대출 이자에 한숨만=“집값요? 정말 황당합니다. 아니 솔직히 짜증나요.”
24일 강원도 춘천시 A아파트에 지난 1월 입주한 김모(34)씨는 이 아파트 49평형(분양가 2억2400만원)에 입주하기 위해 저축했던 돈을 모두 털어 넣고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다. 하지만 매일 기막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자만 늘어갈 뿐 아파트 시세는 분양가보다 3000만~4000만원 싼 ‘깡통 아파트’로 전락한 것. 내집 마련의 단꿈은커녕 매일 악몽만 꾸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결혼 5년 만에 대출 5000만원을 끼고 같은 아파트 29평형(분양가 1억2000만원)에 입주했다는 주부 박모(30)씨는 “아줌마들이 모이면 집값 푸념만 한다”며 “정부가 이 상황에서 버블 얘기까지 해 정작 서민들만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 속출=작년 12월 말 입주한 경남 김해시의 B아파트. 입주 5개월이 넘었지만 전체 700가구 중 300가구가 텅 비어 있다. 1년 전은 달랐다. 당시 프리미엄이 2000만~3000만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주변에서 매물이 쏟아지면서 프리미엄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결국 분양가보다 1000만원 이상 낮은 매물에도 찾는 이는 없다. 김해 C아파트도 올 초 입주를 시작했지만 50%는 텅 비어 있다. 2년여 전 분양 당시 분양권 전매를 알선하는 ‘떴다방’까지 몰렸던 인기 단지였지만 이제는 분양가보다 1500만~2000만원까지 하락했다. 계약금을 포기하고 해약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D아파트는 작년 7월부터 입주했지만 5% 이상이 해약을 요청했다. 물론 건설업체는 대부분 해약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
경남 김해시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보유세 중과를 우려해 손해를 보더라도 팔겠다고 나서는 실정”이라며 “정부 정책이 지방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기존 아파트도 거래가 얼어 붙어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경남 창원의 정모(47)씨는 넉 달 전에 팔았던 아파트 잔금을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집을 샀던 사람이 자신의 주택이 팔리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 탓이다. 부산 해운대 ‘신수영만공인’ 정모 실장은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아 몇 달째 새 아파트에 입주도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건설업체 ‘파격 분양’ 러시=지방 모델하우스 곳곳에는 ‘파격 분양, 중도금 부담이 없습니다’ 같은 플래카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방 인기 지역에서도 파격적인 분양조건이 쏟아지고 있다.
한화건설은 최근 ‘부산의 강남’으로 꼽히는 해운대구 센텀시티에서 아파트 1500여가구를 분양하면서 계약금 1%, 중도금 무이자 조건을 내걸었다. 만덕동에 있는 한 아파트는 입주 후 잔금 납부를 2년간 유예하거나 입주시 잔금을 모두 내면 분양가를 10% 깎아주고 있다. ‘장유넷’ 박지윤 실장은 “지금처럼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는 상황에서 누가 아파트를 분양받겠느냐”고 말했다. 창신대 부동산학과 정상철 교수는 “강남권을 겨낭한 정책이 엉뚱하게 지방 주택경기는 물론 전체 소비 심리까지 얼어붙게 하고 있다”며 “지방은 IMF 때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