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기술 해외 유출은 올해에만 15건에 달하며 이 중 3건은 국가핵심기술이다. 분야별로는 한국 수출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가 각각 5건으로 가장 많다. 유출 대상국은 우리와 치열한 기술 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국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달에도 삼성전자의 핵심 공정 기술을 빼돌려 중국에 반도체 제조업체를 세운 전직 임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첨단산업 분야의 핵심기술 해외 유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6년간(2018~2023년) 산업기술 해외 유출 건수는 149건에 이르며 이로 인해 국내 기업이 입은 피해액은 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술 해외유출 범죄가 이처럼 빈발하는 이유는 법이 미비해 관리 실태가 허술할 뿐만 아니라 유출 범죄가 적발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낮기 때문이다.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33건 가운데 무죄와 집행유예가 87.8%를 차지했다.
그러나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입법은 요원하다. 정부는 지난해 국가핵심기술의 관리를 강화하고 해외 유출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인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유출 행위자에 대한 벌금형 상한을 15억원에서 65억원으로 올리고 기술유출 브로커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했으며 수출 및 해외 인수합병시 신고와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여야 합의로 통과했지만 법사위에서 반년 이상 묶여 있다가 지난 5월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이 무산된 것은 정부가 기술 보호를 내세워 규제를 남발하고 있다며 재계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 보호는 필연적으로 규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규제의 수혜자가 기업이다. 또한 국가핵심기술 개발에는 국가의 보조금이 투입돼 있다는 점에서 재계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도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가 있다면 털어내야 한다. 국회도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진 법안에 법사위가 제동을 거는 것이 합당한 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다시 서둘러주기 바란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한국은 첨단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으며 산업기술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