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타 비웃는 野, 한 술 더 뜨는 與...매표 짬짜미 아닌가

논설 위원I 2023.11.28 05:00:00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선심성 지역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예타)없이 경쟁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 등 예타를 면제하거나 우회하는 사업만 43조 8880억원대이며 구체적 비용을 적시하지 않은 사업까지 포함하면 5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표심에 눈이 어두운 정치권이 재정낭비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예타를 특별법 제정 방식 등을 통해 정면에서 무력화하고 있는 꼴이다.

‘예타 패싱’엔 여야가 따로 없다. 지난 23일 민주당이 서울지하철 5호선 경기 김포 연장 사업의 예타 면제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자 같은 날 국민의힘은 한술 더 떠 창원 청주 천안 등 인구 50만명 이상 비수도권 광역교통시설 확충 사업의 예타 면제 법안을 발의했다. ‘1호선 도심 지상철도 지하화를 위한 특별법’ 등 사업비조차 제시하지 않는 날림법안도 수두룩하다. 논란이 일고 있는 대구∼광주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은 아예 여야 지도부가 짬짜미로 연내 제정에 합의했다. 2년 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졸속처리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연상케 한다.

예타는 국가 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 사업비 500억원 이상 신규사업의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함으로써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제도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빠져 선거철만 되면 지역균형발전 등 각종 명분을 내걸고 예타 면제를 남발하면서 본래 취지가 퇴색된 지 오래다. 특히 문재인정부 시절엔 예타 면제 사업비만 120조원으로 박근혜(25조원)· 이명박정부(61조1000억원) 시절을 합친 금액보다 33조 9000억원이 더 많았을 정도다.

경제적 효용성 없이 매표 수단으로 전락한 대규모 국책사업은 재정의 블랙홀로 작용한다. ‘예타패싱’이 늘어날수록 나라 살림은 황폐화되기 마련이다. 지금 재정 상황은 문 정부 시절의 방만한 씀씀이 탓에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 예타 면제를 남발하지 않도록 요건을 엄격히 정하고 면제 사업이라도 최소한의 비용편익 분석을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되돌릴 수 있는 사업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철저한 사후평가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