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삼성전기(009150) 세종사업장에선 마치 부화실처럼 노란색 조명이 가득한 공간에서 반도체 기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반도체 기판에 미세회로 패턴을 제작하는 노광공정 생산라인에선 UV(자외선) 빛을 쏴서 기판에 회로를 그리는데 흰색 조명에선 경화(단단하게 굳어짐)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클린룸을 포함해 대부분 노란색 조명으로 기판을 보호하는 이유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원래는 빛 차단을 위해서 문도 모두 닫아놓는다”고 강조했다.
1991년 가동을 시작한 삼성전기 세종사업장은 삼성전기 국내 사업장 중 유일하게 반도체 패키지기판 단일 제품을 생산하는 기판 핵심 기지다. 지난해 삼성전기 패키지사업 매출 2조원 중 1조2500억원이 세종사업장에서 나왔다. 반도체 기판은 크게 회로 배선을 구현하는 △전공정(회로 형성·적층·도금 공정)과 표면처리를 하는 △후공정(SR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곳에선 스마트폰, 태블릿PC에 들어가는 모바일 AP, 메모리 반도체, 5G 안테나와 같은 통신모듈 및 전장용 반도체에 들어가는 패키지기판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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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오신(三省吾身)의 미세한 현장관리.’ 삼성전기 세종사업장 공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문구다.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몸을 살핀다’란 뜻으로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반도체 기판 공장의 신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반도체 공장은 먼지나 오염에 특히 민감해 간단한 화장은 물론 선크림도 허용되지 않는다. 마치 학교 급식실처럼 흰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 모자까지 써야 공장에 들어갈 준비가 끝난다. 이후 실내화 물 세척과 바람으로 먼지를 털어내는 에어샤워 과정을 모두 거쳐야 비로소 작업장에 들어설 수 있다.
삼성전기 세종사업장엔 1855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지만 막상 작업장에 들어서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판은 옮길 때도 접촉면을 최대한 줄여 아주 미세하게 잡아 이동시켜야 하는 등 관리가 쉽지 않아 모두 자동화 시설로 운영되고 있어서다. 대부분 로봇으로 운영되는 생산 공정 내에선 기계의 열기와 방진복 탓에 11월의 가을 날씨에도 땀이 저절로 났다.
반도체 기판은 메인 기판에 반도체 칩을 연결하고 반도체 칩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 칩이 두뇌라면 패키지기판은 ‘인간의 신경망’인 셈이다. 과거엔 칩 하나만 잘 만들면 됐지만 인공지능(AI)과 전장이 등장하면서 방대한 정보량을 처리할 수 있도록 반도체를 잘 조합하는 ‘기판’도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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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는 반도체 기판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고 차세대 반도체 기판을 생산하기 위해 새롭게 공장을 짓고 있다. 차세대 CPU로 ARM 기반 프로세스가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반도체 적층 방식인 2.5D 패키징 기술이 각광받고 있는데 신공장에서 이를 구현할 방침이다. 현재 2.5D 패키징 기술을 사용해 패키지기판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매우 극소수다.
삼성전기에 따르면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반도체 시장은 2027년에 7520억 달러(994조 52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반도체 패키지기판은 2023년 106억 달러에서 2027년 152억 달러로 연평균 10% 수준으로 성장할 예정이다. 특히 5G 안테나, ARM CPU, 서버·전장·네트워크와 같은 산업·전장 분야를 주축으로 시장이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심규현 삼성전기 세종사업장 제조기술팀장은 “2020년까지 반도체 시장이 계속 성장하다가 올해 불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 고객사를 통해 비축해 놓은 재고들이 어느 정도 소진됐다고 들었다”며 “내년 상반기 정도엔 시장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기판 시장도 좋아질 걸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공장은 사람이 거의 없는 ‘스마트팩토리’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생산을 비롯해 OHT(자동운송장치)를 활용한 자동화된 물류 이동 등 모든 과정에서 로봇이 활용된다. 각 기판엔 바코드를 부여해서 제작 시기, 보관 장소와 언제 어느 공정에 도착했는지 등을 모두 추적할 수 있도록 한다. 신공장은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일부 공정은 먼저 가동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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