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도입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고 있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이 지역인재를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하지만 각종 예외규정을 이용해 이를 지키지 않고 있어서다. 혁신도시법 시행령은 경력직, 연구직, 지역별 구분모집, 시험 결과 합격 하한선 미달, 지역인재 비율이 의무채용 비율 이하일 때 등 5가지 조건에 따라 지역인재를 채용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사이에 불신만 커지고 있다. 지자체는 공공기관이 지역인재를 덜 채용하려고 예외조항을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역에서는 공공기관 추가 이전과 더불어 지역인재 채용과 관련해서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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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국회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전국의 각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들이 혁신도시 특별법에 명기된 예외조항을 근거로 실제 의무채용 비율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혁신도시 특별법에 명기한 지역인재 의무채용 예외 규정 가운데 ‘지역인재 비율이 의무채용 비율 이하’ 조항이 독소조항으로 지목받는다. 한 직렬을 5명 이하로 채용할 땐 지역인재 비율을 의무적으로 적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예로 한 공공기관에서 사무 직렬 채용 인원을 5명으로 공고했을 때 5명 이하이기 때문에 지역인재 의무채용 비율을 적용받지 않는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현행 법·제도에 따라 채용 규정을 준수하다 보니 실제 의무채용 비율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30개 기존 공공기관(신규지정 21개 제외)의 평균 지역별 지역인재 채용률은 29.4%로 정부의 권고 기준치 24%를 훌쩍 넘지만 이러한 독소조항 탓에 실제 의무채용 비율은 뚝 떨어진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서 충청권으로 이전한 51개 공공기관의 전체 신규 채용인원(전국 포함)은 모두 4404명이었고 지역인재로 선발한 인원은 34.1%인 1501명이었다. 이는 예외조항을 다 합쳐 선발한 지역인재 선발 인원이다. 5가지 예외조항을 제외하면 실제 선발 인원은 단 409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넘게 예외규정으로 뽑아서 의무화 비율(24%)을 넘기는 꼼수를 부린 셈이다. 광주·전남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역시 지난 2019년 2497명을 신규 채용했는데 이 중 1217명을 예외규정으로 뽑았다. 예외규정으로 1217명을 채용하면서 지역인재 채용 적용 인원은 1280명으로 줄어들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3년간 전국 혁신도시 채용 실적을 보면 전체 신규 채용인원은 2018년 1만4338명, 2019년 1만3536명, 2020년 1만665명으로 줄었는데 예외규정에 해당하는 비율은 각각 57.6%, 56.5%, 61.3%로 늘었다.
지난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신정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2018~2020년 지방이전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실적’에서도 지난 3년 동안 지방이전 공공기관이 신규채용한 전체 인원은 3만8538명에 이르지만 지역인재 채용을 통한 입사자는 이 가운데 10.7%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는 정부에 예외규정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충청권 한 지자체 관계자는 “최근 정부에 지역인재 의무채용의 일부 예외규정을 제외해달라고 건의했다”며 “앞으로 정치권과 타 시·도와 연대해 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각 혁신도시에서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의 예외조항을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올해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인재 채용의 정책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탄력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태경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지역 대학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협력해 거버넌스를 구축하도록 실질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켜 “공공기관에 일률적으로 신규 채용인원의 일정 비율을 지역인재로 채용하도록 강제하지 말고 지역 내 사정, 공공기관의 특성 등을 고려한 정책 기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