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뭔 줄 아는가? 입학시험을 공정하게 확립시켜준 일일세.”
인간의 속성을 잘 나타낸 ‘배고픈 건 참을지 언 정, 배 아픈 건 용납하지 못 한다’는 명제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진리에 가깝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고 하는 북유럽 국가들, 그 중 해마다 행복지수 일등을 하는 덴마크에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 나라엔 우리와는 다른 파티 문화가 있다. 마을 공동체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고 주말이면 각자 준비한 먹을거리와 술을 한 병씩 바구니에 담아 파티를 주최한 어느 집에 모인다.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 자식이 큰 시험에 붙었다’느니 ‘내가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등 개인자랑은 절대 금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사람의 법칙’, 바로 ‘배 아픔’을 유발하지 않는 묵시적 규례가 오랜 공동체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얼마 전 ‘더 나은 미래와 삶’을 주제로 정부위원회가 주최하는 미래포럼에 참여한 적이 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고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진입은 했으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삶의 질’ 수준은 이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는데, 객관적으로 낮은 국민 평균소득에 비해 주관적 행복도가 월등히 높은 나라들은 대체로 남미국가이고 이와 반대 현상을 보이는 국가는 석유가 풍부한 잘사는 아랍 국가들이다. 세계경제포럼 보고서에도 ‘행복은 일정수준의 경제력을 넘어서면 그 이후부터는 부(富)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극히 공감되는 내용이다. 여기서 ‘일정수준의 경제력’은 얼마일까 하는 기준은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의 견해로는 ‘경제사회적 중산층’이 아닐까 한다.
이제는 많은 국가들이 성장과 더불어 국민의 ‘삶의 질과 보편적 행복 향상’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2016년에 삶의 질 정책을 수행하는 전담부처로 ‘행복부’를 신설하여 행복 성과지표를 개발하고 정부가 성과를 측정하며 부처마다 행복사무관, 행복위원회까지 설치하고 있고, 스웨덴은 2017년 법률개정을 통해 예산안에 국내총생산(GDP)과 함께 웰빙 측정치를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오늘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신은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여기엔 우리가 과연 선진국이 말하는 ‘성숙하고 합리적이며 지성적인 사회’ 속의 중산층인가 하는 물음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달 간 표창장 위조, 부실인턴 증명서 의혹들 그리고 정의로운 척 해온 말과 행동의 이중성에 실망한 분노들을 보면서, 우리가 교육에서 지향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성, 길러내야 할 인재는 지식인이 아니라 지성인이라는 소신이다. 이것이 새로운 ‘행복(幸福) 중산층’을 길러내는 길이고 일류국가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