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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여느 등산인 동호회 구호가 아니다.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 3학년 학급 교훈이었다고 한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서울·수도권에 인구 49%(2010년 기준)가 산다. 산업과 문화 등 모든 기능이 밀집한 공룡 수도권을 바라보는 지방의 피해의식이 이 말에 절절히 녹아 있다. 1970년대 이후 40여 년 가까이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골자로 한 ‘지역 균형 개발’이라는 정책 목표를 감히 내려놓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 틀을 깨겠단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지난 16일 취임 이후 처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수도권 규제가 도입된 지 30년 이상 지났다. 강산이 세 번 바뀐 것 아니겠냐. 접경지역 등 수도권에도 낙후된 지역이 많다. 수도권이라고 해서 이 상태로 지켜봐야 하는가. 어느 한쪽을 강제로 억누르기보다 주변 환경, 국제 정세 변화를 살펴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제대로 총구를 겨눴다. 1982년 제정한 이 법은 수도권에 공장·대형건물·공공시설·학교 등 인구 집중 유발시설이 멋대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는 문지기 구실을 한다. 이 규제를 풀어 젖혀 수도권에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도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연내 수도권 덩어리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서 과감하게 풀겠다”고 공언한 것과 손발이 맞는다.
반발이 없을 수 없다. 장관 발언 직후 지방 언론에서는 일제히 ‘다시 꺼낸 수도권 규제 완화’, ‘잊을만 하면 도지는 규제 완화 망령’ 등의 사설이 쏟아졌다. 불과 두 달 전 비수도권 시·도지사와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협의체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촉구하는 서명부를 정부에 전달한 터였다. 올해 4월부터 시작한 서명에는 지역민 약 963만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수도권 규제 완화 논란은 실체가 없어요. 뭘 어떻게 풀겠다는 건지 나온 것도 없는데 반대부터 하는 겁니다.” 김동주 국토연구원장은 이를 두고 이같이 일침을 놨다. 지난 20일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국토연구원 집무실에서다. 올해 6월 취임 이후 언론과의 첫 공식 인터뷰다.
◇수도권 규제 완화, 정치화해선 안 돼
전임 김경환 원장(현 국토부 제1 차관)이 부동산시장 이론에 정통하다면 김 원장은 ‘지역 개발통’이다. (물론 김경환 차관도 2008년 서강대 교수 시절 KDI ‘지역개발정책의 방향과 전략’ 보고서에서 ‘수도권 규제의 재인식과 정책 전환’이라는 글을 쓰는 등 대표적인 수도권 규제 완화론자로 알려졌다.) 김 원장은 한국지역학회장 등을 지냈고, 현재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본 위원, 지역생활권전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전남 목포에 가보니 거기 거리에까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더라”며 “수도권 규제 완화 이슈가 이제는 정치적 아젠다(의제)가 돼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지방의 핵심 논거는 ‘규제를 풀면 인적·물적 자본이 수도권에만 몰려 지역 경제가 침체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이익이 곧 비수도권엔 손해라는 ‘제로섬 게임’이다. 하지만 수도권과 인접한 충청권역을 제외하면 이런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수도권 규제 존치가 균형 개발이라는 당위성에 기대 지역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적 구호에 불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원장은 “정치적 논리가 아닌 실체를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며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을 바탕으로 충분히 논의해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지역 균형 개발의 하나로 여기는 인식 전환도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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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은 “기업이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어려움을 겪는 작은 규제들이 많다”며 “이런 부분은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낙후된 수도권 북부지역도 (규제 완화를) 조금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개발 패러다임, 상향식으로 바꿔야
지방정부에도 쓴소리했다. 그는 “이제는 지역도 ‘우리한테 뭘 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지역 발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유치,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특구(特區) 개발 등 일방적인 재정 지원만 바라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방법은 체질 개선이다. 종전 하향식 개발을 상향식으로 바꿔 자생적인 지역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주장이다.
“지방대 육성을 위한 ‘BK(두뇌 한국) 사업’을 해도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서울로 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미래는 사람 싸움입니다. 지역 스스로 고급 인력을 잡기 위한 문화·편의시설을 갖추는 등 정주 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문화와 결합한 도시재생, 지식기반의 혁신 경제 생태계 조성 등을 들었다. 김 원장은 “과거 구미·울산 등 지역 거점 도시에서 대기업이 주도하는 전자·자동차·조선·석유·화학 사업 등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며 “수평적 관계와 아이디어에 기초한 지역 혁신 시스템을 구축해 저성장 극복의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년 세종시 이전…“지역 발전 실천할 것”
국토연구원은 내년 하반기 세종시로 이전한다. 1999년 서울에서 지금의 안양 평촌 청사로 이전한 이후 17년 만이다. 정책 최일선에서 지역 개발 문제를 고민해 온 김 원장의 포부는 남달랐다.
“세종시로 이전하면 연구자로서 지역 현장과의 소통이 한결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그곳에서 지역 균형 발전을 직접 실천하겠습니다.”
◇김동주 원장은…
1956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건축공학 학사, 동 대학원 도시계획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에서 지역경제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1년 국토연구원에 입사해 24년간 한 길을 걸었다. 국토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한국지역학회장 등을 지냈으며, 지난해 1월 국토연구원 부원장, 올해 6월에는 원장에 올랐다. 현재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본 위원, 국토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추진위원회 위원,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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