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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930년대 경성, 1950년대 명동, 1980년대 서울. 그때 그 시절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공연 세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서울 1983’(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뮤지컬 ‘명동 로망스’(내년 1월 3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음악극 ‘천변살롱’(12월 10∼27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이다.
‘서울 1983’은 김태수의 희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고통과 이산의 아픔을 안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명동 로망스’는 2015년을 사는 9급공무원 선호가 1956년의 명동 한복판에 뚝 떨어지게 된다는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다. 과거로 간 선호가 당대의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작가 전혜린 등을 만나 우정을 나누고 예술을 교감하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천변살롱’은 1930년대 한국가요사를 재조명했다. 신낭만주의에서 혁신적인 다다이즘까지 문화의 용광로였던 1930년대 경성, 그중에서도 모더니스트가 자주 모이던 천변살롱을 옮겨왔다. 각 작품은 영상과 소품은 물론 세심한 대사를 활용해 그 시대를 재현했다. 작품 속에 나타난 ‘서울358’(1930, 1950, 1980년대)을 들여다봤다.
△축음기·아이스께끼…그 시절 소품
가장 눈에 띄는 건 시대를 상징하는 소품이다. ‘천변살롱’에는 한국 최초의 화장품인 ‘박가분’과 일제강점기의 신문, 왕서방 모자가 나온다.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는 ‘축음기’는 1930년대에 이어 1950년대 명동에도 동일하게 쓰였다. ‘명동 로망스’의 주 배경인 1956년 명동로망스카페에는 축음기와 LP 레코드판이 놓여 있다. 김민정 연출은 “한국전쟁 이후 명동은 여러 스타일이 혼재해 있었다”며 “무대를 통해 시대를 상징하고 영상으로 시공간을 풀어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1983’에서는 1980년대뿐 아니라 50여년 전 서울을 엿볼 수 있다. ‘팔도노래자랑’이 열리는 무대 한쪽에서는 ‘아이스께끼’라고 적은 파란통을 볼 수 있고, 한 청년은 양쪽 어깨에 커다란 양동이를 메고 바쁘게 돌아다닌다. 다방 옆에 설치한 빨간색 공중전화기와 김진규·김지미 주연의 영화 ‘별은 내 가슴에’ 포스터, 당시 집집마다 걸려 있던 ‘오줌싸개 키’ 등도 보인다. 공연 속 ‘팔도노래자랑’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준다는 1등 상품은 무엇일까. 1966년 금성사(현 LG)가 제조한 우리나라 최초의 ‘금성 텔레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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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교복·모던룩…의상의 변천사
1920년대에 젊고 남성적인 스타일이 유행했다면 1930년은 회의적이고 우울한 시대적 분위기에 어울리게 여성적이고 우아한 세련미를 강조한 시기였다. ‘천변살롱’ 여배우들의 스커트길이가 길어지고 가슴과 허리, 히프를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슬림 실루엣 드레스’가 등장한다. 파스텔톤의 꽃무늬 직물로 만든 원피스도 필수품. 남자들은 편평하고 챙이 있는 모자를 한쪽 귀와 눈이 가릴 정도로 비스듬히 기울여 썼다. 멋 좀 부리고 다니던 남자가 썼다는 버스터 키튼 모자와 해롤드 안경, 챙이 없고 둥근 모양의 베레모도 빼놓을 수 없다.
1950년대 명동에는 중절모가 등장한다. 여성들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투피스 정장을, 남성들은 스리피스의 클래식한 정장을 입고 무대를 활보한다. ‘서울 1983’에서 그린 과거 서울 거리에서는 위아래 검정색의 남학생 교복과 세일러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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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가 운행되는 명동거리…대사·영상의 시대상
“지금 단성사에서 최승희가 나오는 영화 ‘반도의 무희’를 한다는데….” ‘천변살롱’의 여주인공 모단의 대사에는 시대를 상징하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반도의 무희’는 한국 신무용을 개척한 최승희의 인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영화로 1936년 일본 도쿄에서 개봉했고, 국내서는 신흥영화사가 제작해 4년 장기상영이라는 흥행기록을 남긴 작품. “아, 이거요 화신백화점에서 산 거예요” “명월관은 아주 고급스러운 기생집이었지요”라는 대사에서도 시대를 엿볼 수 있다. ‘화신백화점’은 민족자본으로 설립했던 국내 최초의 백화점이었고, ‘명월관’은 구한말을 대표하던 요릿집이다.
‘명동로망스’에서는 전차를 운행하는 60년 전의 명동거리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극 중 박인환과 전혜린이 통금시간이 다된 줄도 모르고 술을 마시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이나 ‘최초의 국산자동차 출시’ ‘최초의 패션쇼 개최’ 등의 대사가 1950년대를 이야기한다.
‘서울 1983’에서는 138일간 453시간 45분의 마라톤방송으로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시간 생방송’의 기록을 남긴 1983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실제영상이 나온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라밤바’ ‘울릉도 트위스트’ 등의 노래는 당시의 향수를 자극한다. 김덕남 서울시뮤지컬단장은 “1983년은 KAL기 추락사고와 아웅산 폭발사건 등이 일어났던 슬픈 시기였다”며 “자료와 영상을 활용해 그 시대를 최대한 가깝게 고증하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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