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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정부청사 코앞에서 '임대아파트 불법 분양' 판쳤다

박종오 기자I 2015.10.08 06:00:00
△정부 청사가 있는 세종시에서 공공임대 아파트 불법 분양이 판을 친 것으로 나타났다. 청사 인근 세종시 종촌동 일대에 신축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늘어서 있다. [사진=세종시]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 중앙행정기관 앞마당에서 민간 건설사가 공공임대 아파트를 사실상 분양하는 불법 행위가 버젓이 자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 사이 세종시에서 영무건설·중흥종합건설·한양 등은 5년·10년 공공임대 아파트 5개 단지(총 4216가구)의 입주자를 모집하면서 ‘확정 분양가’ 계약을 받았다.

10년 공공임대는 최장 10년간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살다가 입주 후 5년이 지나면 건설사가 입주민에게 분양 전환을 할 수 있다. 5년 공공임대는 2년 6개월 뒤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 이들 건설사는 미래의 분양 전환 가격을 미리 약속하고 임대보증금에 매매 예약금이나 월세 선납금을 얹어 받는 방식으로 사실상의 불법 분양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세종시 현황은 국토부가 지난 7월부터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공공임대주택 실태 조사를 벌여 파악한 것이다. 공공임대 아파트를 짓는 사업자에게 정부가 임대주택 용지를 최대 40% 싸게 공급하고, 기금 저리 대출, 세금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주는 만큼 불법 분양이 국민의 혈세 누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본지 7월 20일 자 ‘[단독]임대주택 꼼수에 혈세 줄줄 샜다’ 기사 참고)

◇임대업체, 분양가 최대 100% 미리 받아…공무원에 특별공급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2012년 7월 세종시 1-2 생활권에서 입주자를 모집한 ‘범지기마을 11단지’(세종영무예다음) 아파트 전용면적 84㎡ 587가구의 경우 2억 6000만원의 확정 분양가에 공급됐다. 건설사는 법으로 정한 임대보증금 5454만~1억 1042만원보다 최대 1억원 이상 많은 1억 7200만원을 입주 때까지 내도록 했다. 이 아파트가 입주한 지난해 10월 주변 전세 시세(1억 2000만원)보다도 5000만원 가까이 많은 돈을 받고 아파트 건설 대금을 미리 회수한 것이다.

2013년 3월 세종시 1-1 생활권 M 12블록에서 공급한 ‘중흥 S-클래스 프라디움’ 전용 59㎡ 887가구는 확정 분양가를 1억 9475만원(기준층)으로 책정했다. 건설사는 임대보증금에 합의금을 더하는 방식으로 계약자로부터 분양가의 100%를 입주 때까지 받았다. 3-2 생활권에 들어서는 ‘한양수자인 와이즈시티’ 2170가구도 지난해 9월 유사한 이면 계약이 이뤄졌다.

그러면서도 건설사들은 정부 혜택은 고스란히 받아 챙겼다. LH는 중흥종합건설에 임대 아파트 용지를 조성원가의 80·90%인 477억 9686만원에 공급했다. 처음부터 분양주택 용지로 팔았다면 534억 5185만원(원가의 90·100%)에 매각할 수 있었던 땅이다. 건설사가 불법 분양으로 56억원 가량 차익을 남긴 것이다. 범지기마을 11단지와 한양수자인 와이즈시티의 경우 LH가 주택 건설 용지를 각각 27억원, 262억원 싸게 팔고 정부 주택도시기금까지 지원받았다.

특히 이렇게 확정 분양가를 도입한 공공임대 아파트 4216가구의 35%인 1475가구는 세종시 이전 공무원에게 특별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이 아파트를 싸게 분양받기 위해 불법에 가담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입법조사처 “확정 분양 방식, 임대주택법 위반”

이와 관련해 국회입법조사처는 ‘공공임대 확정분양가 계약의 적법성 여부 검토 및 개선 대책’ 보고서를 통해 “사업자가 임대주택 운영보다 분양 전환을 통한 투자금 회수에 관심이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분양 전환 가격을 미리 정하고 매매예약금을 받는 것은 분양 전환 규정 및 임대조건 법령 위반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임대 조건을 어긴 임대사업자에게는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지자체가 임대사업자 등록도 말소할 수 있다. 분양 전환 규정을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입법조사처는 “분양가 사전 확정 방식은 중·저소득층 임차인(세입자)의 목돈 마련에 부담을 주고 임대주택법 제정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주택시장 공급 질서를 교란할 우려도 있는 만큼 법으로 이를 금지하고 임대조건에 관한 중요사항은 법률에서 직접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국토부 조사 이후에도 불법 분양 여전

향후 건설사 처벌의 실효성과 형평성을 높이려면 더 정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토부는 자체 조사 결과 인천·대전·부산·충북 등 9개 지자체는 이런 사례가 없었고, 서울·경기·대구 등 7곳은 아직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토부가 조사 방침을 밝힌 직후인 지난 8월에도 충북 충주시 충주기업도시에서 5년 공공임대인 ‘신우희가로 스테이’ 아파트가 확정 분양가 방식으로 공급됐다. 경기도 광교·동탄2·배곧신도시 등에서 올해 이처럼 불법 분양한 아파트도 3개 단지나 된다.

공공임대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김 의원은 “전·월세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5년·10년 공공임대를 모두 장기전세 같은 10년 전세 임대주택으로 바꿔야 한다”며 “아울러 10년간 전세 인상률 제한 및 저소득층 저리 융자 지원 등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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