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재정 파탄에 내몰린 그리스가 마침내 외국인들에게 섬들을 팔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유럽연합(EU) 채권국과 국제기구의 섬 매각 압력에도 불구하고 파판드레우 정부는 '그리스의 상징'인 섬을 팔 수 없다며 버텨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5일 "그리스 정부가 막대한 국가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섬의 매각과 장기 임대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미코노스섬은 국유지 가운데 약 3분의 1을 매물로 내놓고 이 지역에 고급 관광단지를 조성할 매수자를 찾고 있다. 로도스섬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투자자들이 자국의 막대한 인구를 겨냥, 지중해 관광지로 개발할 물건을 찾고 있다. 영국 프로축구팀 첼시 구단주이자 러시아 부호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그중 한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적인 섬 거래 웹사이트(privateislandsonline.com)에는 세계 갑부를 겨냥한 물건들이 올라와 있다. 이오니아해(海)에 있는 1235에이커(5.0㎢)의 나프시카섬이 1500만유로, 메이페어와 첼시지역 섬도 200만유로(29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와있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 소유의 개인 섬 스코르피오스(Skorpios)도 지난해부터 매물로 나와있는 상태다. 1968년 오나시스와 재클린의 결혼식이 열린 곳이다. 섬 소유자인 오나시스의 외손녀 아티나 루셀 오나시스는 지난해 전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빌게이츠와 1억5000만유로를 두고 매각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스 섬의 풍광은 최근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를 통해 세계인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유명 인사와 부호들에게 그리스 섬은 구매 1순위였는데, 이제 그 섬들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지난 5월 폭동과 파업으로 부동산 가격이 최대 20%까지 폭락한 상태다.
그리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지난달 EU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한 뒤부터다. 정부는 현재 도서(島嶼) 시세를 고려할 때 섬 매각과 장기 임대만이 그리스의 재원을 확충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섬 매각은 또 인프라 건설과 치안 등 섬 개발 자본을 끌어들여 일자리와 세원을 발굴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현재 그리스의 약 6000개 섬 중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는 227개다. 마키스 페르디카리스 그리스 도서 부동산국장은 "국민의 소유인 섬을 휴양지로 팔아야 한다는 게 슬프다. 그러나 경제개발과 인프라 건설을 위한 외국인 투자 유치가 우선이다"고 말했다.
런던의 투자은행 에볼루션 시큐리티스의 게리 젠킨스 대표는 "이 지경이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적어도 그리스가 채권국과 국제기구가 요구하는 의무를 이행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독일은 지난 3월 EU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그리스가 자국의 섬과 역사적 건축물, 미술품 등을 매각해야 한다고 그리스를 압박해 왔으나 그리스는 국영 항공사와 은행, 카지노 등 국영기업의 지분 매각은 할지라도 그리스 섬만은 안된다는 입장이었으나 지금은 철도와 상수도 서비스 매각까지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