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단행된 국가정보원 수뇌부 경질 인사는 내부 갈등에 대한 문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규현 국정원장과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1차장 겸 국정원장 직무대행에 홍장원 전 영국 공사, 2차장에 황원진 전 국정원 북한정보국장을 임명했다. 수뇌부 3인이 동시에 교체된 것도, 후임이 내정되기도 전에 원장이 물러난 것도 국정원 역사상 이례적이다. 대통령실은 인사 이유에 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문책성 경질이 분명해 보인다.
국정원 내부 갈등은 과거에도 정권교체기에 불거지곤 했지만 이번만큼 오래 심각하게 계속된 적은 없다. 국정원에서 내부 갈등과 연관된 인사 잡음이 겉으로 드러난 것만 이번 정부 들어 세 차례다. 지난해 10월 윤 대통령 측근으로 꼽히던 검찰 출신 조상준 기획조정실장이 김규현 원장과 인사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임명된 지 4개월 만에 사퇴했다. 지난 6월에는 김 원장 측근의 인사 전횡이 문제가 되어 1급 간부 인사가 닷새 만에 취소됐다. 최근 대통령실의 지시로 권춘택 1차장에 대한 직무감찰이 이루어졌는데 그 발단은 내부 갈등과 연관된 비리 제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으로서 조직 운영의 비밀 유지를 보장받기 때문에 외부에서 내부 갈등의 실상을 자세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로로 외부에 알려진 내용을 보면 현 정권 라인과 전 정권 라인 간의 알력, 공채 출신 중심 주류파와 외부에서 유입된 비주류파 간 갈등 등에서 비롯된 파벌 다툼이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조직 기강이 해이하고 직원들이 업무에 충실하기보다 줄 대기에 연연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안으로 곪아터진 국정원이 국가 안보를 위한 정보활동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해낼 리가 없다.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해 궤도에 올려놓는 등 안보 상황이 어느 때보다 엄중해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한 ‘정보 실패’로 지탄을 받고 있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 정보 전쟁의 중요성이 커진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을 저런 상태로 놔둬서는 국가 안위가 위태롭다. 수뇌부 교체에 그칠 게 아니라 내부 갈등의 뿌리를 뽑아내는 대수술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