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 넘은 나이에 홍익대 미술대학원에 들어가 2년 반을 공부했다. 10년 이상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 가족들도 모르게 시작한 일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은 곧 꿈이 됐고, 열정이 됐고, 치유를 받는 선물이 됐다. 올해 나이 66세. 낮에는 개인적인 일을 하고 밤이 되면 그림을 그린다. 바쁜 와중에도 그간 15번의 개인전과 160번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한 마디로 다작하는 작가다. 만학도로 미술에 대한 꿈을 이룬 전지현 작가의 이야기다.
전지현 작가의 16번째 개인전 ‘Invisible World’(미시계)가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E&L 갤러리에서 열린다. 5년 동안 작업해 온 비구상화와 추상화 30여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최근 E&L 갤러리에서 만난 전 작가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마다 무의식의 시간으로 몰입한다”며 “이때 느낀 치유의 감정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전시를 열게 됐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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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구상화를 그리다가 추상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건 힐링의 순간을 경험하면서다. 전 작가는 통증으로 몇년간 고생을 하다 치료 후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다. 대상과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하는 구상화를 그리는 일도 재밌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면서 그리는 일이 그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됐다.
“마음 가는대로 그리다보니 복잡한 마음도 치유되고 더 잘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어요. 그림이라는 게 결국은 인생이고, 사람 사는 모습이라는 나름의 해석을 하면서 작업을 하니 그리기가 더 쉽더라구요. 하나의 물성을 표현하는 일이 어느 순간 여행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마음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걸 그려나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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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2019년에 완성했던 ‘풍요’다. 커다란 도자기 윗부분에 ‘W’ 모양의 입구가 그려져 있고 아랫부분에는 복주머니를 달았다.
“비우고 나누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그렸어요. ‘W’ 모양은 여성의 가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풍요로움을 의미하죠. 도자기 밑이 뚫려 있는데 비우고 나면 또 다른 풍요로움이 채워진다는 의미로 복주머니를 그려 넣었어요. 수없이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완성했던 작품이라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도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세계를 표현하면서 관람객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전 작가는 “내 나이가 되다 보니 그간 살아온 여정을 많이 생각한다”며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열심히 그린 작품들을 보면서 관람객들도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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