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계모임과 전세…사금융과의 '위험한 동거'

정수영 기자I 2023.07.26 06:11:00

새마을금고, 지금도 ''전국민 계모임'' 수준
40년간 사금융 역할 해온 전세, 불신 커져
마을금고·전세, 강력한 안전장치 마련해야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새마을금고 금융부실 우려가 확산하자 어린 시절 어렴풋한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건넛마을에 살던 동네 청년회장이 한 달에 한 번 장부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다녔던 기억이다. 청년회장이 우리 집에 들를 때면 어머니는 항상 녹색 표지로 된 통장을 꺼내 오셨고, 쌈짓돈 두어 장을 건넨 뒤 통장과 장부에 도장을 찍으셨다. 나의 기억이 맞는지 아직도 고향에 사시는 어머니께 여쭤보니, 그걸 어떻게 기억하느냐며 웃으신다. 동네에서 운영하던 마을금고는 주민이 돌아가며 일을 맡았고, 한 달에 한 번 자발적으로 출자금을 냈다. 어머니는 내 기억 속에 저장돼 있지 않은 다른 정보 하나도 꺼내주셨다. 6개월 정도 착실히 수금 일을 하던 청년회장은 모아 놓은 출자금 중 일부를 금고에 납입하지 않았고, 뒤늦게 그 사실이 알려지며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마을금고는 전쟁 직후인 1960년대 초반, 마을 사람들끼리 쌀과 돈을 자발적으로 모으고 빌려주던 계모임 문화에서 시작됐다. 은행(지점)이 모자란 시골 마을에선 사실상 사금융 역할을 한 셈이다. 새마을금고법이 만들어진 1983년 이후에도 마을금고 이사장이 조합원인 동네 주민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특별한 보증이나 담보 없이도 돈을 빌려주는 게 가능했다. 지금은 전국에 마을금고가 1294개에 달하고 자산 규모가 284조원이 넘는데도, 여전히 이사장 재량으로 지인이나 부실기업에까지 대출을 해주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국민 계모임’이란 비아냥도 나온다. 몸집은 공룡인데 여전히 계모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먹구구식 운영을 하고 있다는 불신이 쌓인 표현이다.

자료사진 [이데일리 DB]
계모임으로 시작해 사금융 역할을 하던 마을금고가 제도권 금융으로 흡수된 것과 달리, 40년 넘게 그 골격을 유지하며 아직까지 사금융 역할을 하고 있는 제도가 있다. 바로 ‘전세’다.

전세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니즈가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시장에 안착한 주거방식이다.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목돈을 굴리거나 다른 집을 추가로 사는 게 가능했다. 임차인은 2년 거주 후 보증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어 전세를 주거사다리에 올라타기 위한 과정으로 여겼다. 이는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다. 전셋값도 계속 오르니 집주인은 받은 보증금이 당장 없어도 다른 세입자를 구해 돌려주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전셋값을 포함한 부동산 가격이 언제까지나 오를 순 없다는 점이다. 최근 벌어진 ‘전세사기’, ‘깡통전세’, ‘역전세’ 같은 상황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선 더 자주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최소 수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사인간 거래에만 맡겨두기에는 전세시장이 너무 비대해졌다.

마을금고의 시발점인 계모임이나 전세제도가 명맥을 유지한 것은 ‘신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 그것이 사금융의 원천이다. 하지만 안전장치 없는 신용은 언젠간 숨겨놨던 불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만다. 덩치가 커지고 시장이 경착륙 상황을 맞게 되면 더 자주 그럴 수 있다. 전세제도는 보증금 일부분을 신탁하도록 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전국민 계모임’이라는 마을금고는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감시와 감독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신용을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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