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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년' 욕설에 툭하면 고소…"터질 게 터졌다" 교사 하소연

손의연 기자I 2023.07.24 06:03:03

[무너진 교권]②
성희롱·욕설 등 교실 속 위협…현직 교사들의 증언
''신고'' 무기로 교사 위 서는 학생
교실 찾아와 교사 울리는 학부모

[이데일리 이영민 손의연 기자] “선생님이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아이들이 알고 비아냥거려요. 고학년 아이들이 교실에서 ‘발기 사이즈를 알아보라’는 말을 선생님에게 들리게 해도, 이를 지도하면 제가 성희롱을 하는 경우로 몰릴 수 있어요. 이렇게까지 교사의 지도가 제한되는 분위기예요.”

서울 송파구에서 근무하는 10년 차 김모 교사의 토로다. 김 교사는 “반성문을 쓰게 했다고 아동학대로 걸린 교사가 있었는데 이후 매일 자기검열을 하면서 소극적으로 변했다”며 “학교도 교사를 보호해주는 분위기는 아니다. 교사에게 주어지는 책임감에 비해 보호받을 울타리는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학부모와 관련해선 아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같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소재를 찾아 찾아 사과를 받으려는 일부 학부모의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새내기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사건이 교권 침해 문제를 터뜨리는 도화선이 됐다. 교사들은 해당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터질 게 터졌다”며 성토하는 분위기다. 수업과 행정업무 등 격무에 더해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하는 감정노동으로 한계치에 다다랐다며 무기력함을 호소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추모객이 담임 교사 A씨를 추모하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교사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무한 책임’이라니”

‘교권 추락’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잇달아 발생한 사건들로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교사들은 학생의 교육지도와 학부모의 악성민원, 현실과 맞지 않는 업무 부담 등에 둘러싸였지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양천구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해 교사가 전치 3주의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학생은 정서·행동장애 학생으로 특수반 수업을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교사가 교실에서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 동료 교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30년차 교사 A씨는 “지난해 6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수업 중에 욕설을 자주 하는 일탈이 심한 학생들이 있었다”며 “선생님이 자기들을 혼낼 수 없다는 걸 안 아이들이 뒤에서 대놓고 ‘이 XX년아’하고 욕설을 외쳐도 아이들을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학생들이 SNS에 교사들 사진, 실명과 함께 욕설과 조롱하는 글을 올려 심각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과정이 쉽지 않았고, 아이의 징계보단 교사 특별휴가 등 지원에 그친다는 말이 결국 포기했다”고 했다.

또다른 교사 30대 이모씨는 “작년에 ADHD가 심한 ‘금쪽이’같은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는 ‘죽여버리겠다’, ‘X로 찌르겠다’는 괴성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외쳤다”며 “한 번은 이 아이가 나와 둘이 있는 상황에서 문을 부수려 하고 책상을 발로 찼다. 당시 아이가 있지 않은 쪽으로 책상을 밀었는데 아이가 ‘이거 아동학대인 거 아시죠?’라고 해 순간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이씨는 “이 아이는 대안학교 입학도 거절당했는데, 한 반에 6명 있는 대안학교에서도 안 되는 일을, 공교육에서 감당하라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싶었다”고 하소연했다.

22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추모객들이 담임 교사 A씨를 추모하기 위해 학교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뉴시스)
◇“격무도 소화 힘든데 금쪽이 ‘학부모’, 왜 내가 달래나”

한 교사는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를 ‘달래는 일’조차 교사의 업무가 됐다고 자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이 지난 5월 발표한 ‘2022년도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총이 접수한 교권침해 상담 건수는 520건으로 6년 만에 최고 건수를 기록했다. 교권침해 주체는 ‘학부모’가 241건으로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송파구 김모 초등학교 교사는 “화장실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는 학생이 있어 지도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학부모는 ‘학원에선 모범생’이라고 반박을 했다”며 “옆 반에선 급식실에서 아이를 혼냈더니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와 ‘왜 공개적으로 혼내느냐’며 큰 목소리를 내며 항의했고, 교장실까지 찾아갔다. 그 선생님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담임을 내려놨다”고 토로했다.

특히 저학년 담임일수록 그 압박은 더 크다는 게 김 교사의 설명이다. 그는 “1학년의 경우 부모와 조부모까지 상대해야 한다. 공개수업을 하면 4명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며 “‘아이의 똥을 닦아달라’, ‘약 먹여줘라’, ‘내가 오늘 혼냈는데, 애 기분을 챙겨달라’는 요구도 한다. 고소나 신고가 들어가면 혼자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저연차 교사 B씨도 “올해 자주 싸우는 아이들이 있어 방과 후 화해시키려 상담을 했는데, 한 아이의 부모가 이걸 보고 ‘아동학대·감금’이라며 따지고 나섰다”며 “이후 내내 매일 교장과 교감에게 전화하며 나를 다른 학교로 보내라고 항의하고 있다고 한다”고 했다. 또 “마음에 안드는 아이가 있다면서 자리를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건 기본이고, 아이의 발표 횟수, 화장실에 가는 횟수까지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들도 있는데 학부모가 개입하면 지도가 어렵다”며 “교보위는 학부모에게 맞거나 욕을 들었을 때만 대처할 수 있고, 악성 민원이나 전화를 받을 경우엔 별 도움이 되지 않아 교사들이 단념하는 경우가 많다”고 씁쓸해했다.

아울러 저연차 교사들에게 쏠린 업무부담도 이번 서이초 비극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고인이 맡았던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관리 업무는 교사들이 기피하는 담당 업무 중 하나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사는 “서이초의 공지를 봤는데, 그래도 저연차는 강요받은 업무를 한 게 맞다고 본다”며 “강남권엔 중간 연령대 교사가 없고 나이가 있는 교사들은 특히 힘들어서 나이스 업무를 안 한다”고 말했다.

교권 침해 공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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