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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폭력의 시대,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들

김보영 기자I 2023.01.30 06:30:00

-심사위원 리뷰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연극 '그때도 오늘'
두 인물의 싸움, 4가지 이야기로 풀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폭력에 질문 던져

(사진=공연 배달서비스 간다)
[김수미 극작가] 공연 배달서비스 간다의 ‘그때도 오늘’은 두 인물의 싸움을 다룬 4개의 이야기를 통해 폭력의 역사에서 쓰러져 간 인간을 주목한다.

이야기는 4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920년대 경성 주재소, 1940년대 제주, 1980년대 부산 유치장, 2020년대 최전방을 배경으로 네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이들은 모두 하나의 주제를 관통한다.

장마다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해 싸운다. 각기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며 인물의 살아내고 있는 ‘그때’를 짚어낸다. 인물들의 싸움은 이념의 충돌로 보이지만 살아내는 각자의 방식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들을 결계처럼 둘러싸고 있는 ‘그때’의 국가가 존재한다.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국가와 싸우고 있다.

1장 ‘1920년 경성’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에 잡혀 온 두 학생의 이야기다. 이들은 주재소의 벽 너머에 있는 존재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공포와 싸운다.

2장 ‘1940년대 제주’는 해방 이후 그곳에 있다는 이유로 남로당이 돼 죽임을 당한 4.3 사건을 담아냈다. 죄가 없어도 유죄가 되는 사상으로 처단당한 시대의 폭거에 쓰러진 두 죽임이 있다. 3장 ‘1980년대 부산’은 민주화 운동으로 잡힌 대학생과 국가관이 충돌하는 중년 남성의 싸움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옳다고 계속 옳은 것인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본분에 맞게 사는 건 무엇인지 ‘오늘’도 반복되고 있는 화두를 들고 싸운다. 4장 ‘2020년대 최전방’은 두 군인의 싸움을 통해 개인의 싸움을 너머 국가 간 전쟁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전쟁 나면 다 죽으니까”라는 군인의 대사처럼 싸움의 확장인 전쟁은 인간의 종말이다.

작품 속 개인의 싸움은 “더 말하고 싶고 듣고 싶다”는 대사처럼 감정을 풀어내는 수단으로 쓰인다. 하지만 개인을 결박한 시대와 사회, 국가의 폭력은 개인을 죽이는 결과를 도출한다. 우리가 왜 싸우고 있는지, 싸우는 대상이 누구인지 묻는 동시에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는 강렬한 외침으로 귀결한다.

무대는 간결하다. 누군가가 썼을 그러나 지금은 쓰임을 다한 의자가 무대 양쪽에 쌓여 있다. 특정 시기와 장소의 지정을 피한 소품도 눈에 띈다. 예컨대 나무, 달 등 근현대사의 시간 어느 지점과도 충돌하지 않을 오브제를 세웠다. 무대 중앙에 놓아둔 벽은 단절된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변이되면서 공간을 전환한다. 벽으로 지칭되는 구조물은 외적으로는 공간연출과 환기의 역할을 담당했으나 내적 의미로는 ‘싸움’의 이유를 상징한다. ‘충돌’의 단초가 된 단절의 ‘벽’이기도 하고, 개인과 개인에겐 부숴 버리고 싶은 벽이기도 하고, 개인이 넘을 수도 부술 수도 없는 시대의 벽이기도 하다.

8명의 등장인물을 2명의 배우가 소화하게 함으로써 연기의 보는 맛을 살렸다. 시대를 관통하게 하는 생존자이자 폭력의 시대를 살아온 인간의 역사는 ‘그때도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는 물고 물리는 해석이 가능하게 한다. 여전히 현재형이자 재생산되고 있는 싸움과 폭력, 폭력에 파괴당한 죽음들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며 묵직한 질문을 완성했다. 이는 극적 효과를 상승시키면서 살아있는 오늘 내가, 넓게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을 생각하게 한다.

답이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 파괴라는 정해진 길로 내달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제동을 걸 수 있는 것도 살아 있는 자들의 것이고 진로 변경도 살아있기에 가능하단 것이 아니겠는가. 작품은 이렇게 물으며 객석을 사유의 시간으로 밀어 넣는다.

작가 오인하의 주제를 다루는 극작술과 주제의 무거움을 담백하게 풀어낸 연출 민준호의 간결한 리듬감이 관객을 무대로 흡입시켜 ‘그때도 오늘’로 만드는 공연이다.

김수미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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