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상황 속에 은행을 향한 외부 시선이 따갑다. 금리상승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와 사회에 환원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주주배당확대를 요구하는 행동주의펀드와 대손충당금을 더 쌓으라는 금융당국의 압박 속에서 눈치보기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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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얼라인)는 이달초 7개 은행지주에 주주서한을 보내 주주 환원을 확대할 것을 공식 요구했고, 25일 주총 안건을 사전 공개했다. 보통주자본비율 13% 이상 이익은 전액 주주 환원, 당기순이익의 최소 50% 주주 환원 등이다. 얼라인측은 다음달 9일까지 은행지주들이 자본배치·중기주주환원 정책 등을 도입하지 않으면 3월 주주제안권 행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실제 배당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019년 13조9000억원에서 2020년 12조1000억원으로 감소했지만 2021년 16조9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도 3분기까지 15조원을 기록해 전년과 비슷한 수준의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지주는 자본비율 12%를 넘는 이익은 환원을 원칙으로 하겠다며 주주 요구에 화답하기도 했다. 은행의 배당 확대에 대한 기대가 반영돼 KB금융(105560) 신한지주(055550) 하나금융지주(086790) 우리금융지주(316140) 등 은행주 주가는 연일 크게 올랐다.
배당확대를 요구하는 주주들과 반대로 금융당국은 자본건전성을 강화하겠다며 은행들은 압박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손실흡수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은행업감독규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은행은 예산 손실에 대응해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손실흡수능력을 보완하는 방법으로는 대손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금융위는 그간 저금리 기조와 코로나19 지원 조치 등을 감안할 때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이나 부실채권 비율 등 지표에 착시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은행 총여신 규모는 2019년 1981조원에서 지난해 9월 2541조원으로 500조원 이상 급증했다. 저금리 기조와 코로나19 지원에 따른 유동성 공급 정책 등이 맞물린 결과다.
반면 부실채권 비율은 같은 기간 0.77%에서 0.38%로 감소했다. 지표상으로 보면 건전성이 좋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한 유예 조치가 이뤄졌고 이후 금리가 크게 올랐음을 감안할 때 ‘잠재 부실’이 곧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7일 은행장들과 간담회에서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이 연체와 부실에 빠지지 않도록 은행권의 더욱 세심한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선제 대응을 요청하기도 했다.
현재 규정상으로는 감독당국이 미래 불확실성에 대응해 사전에 은행들에게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요구할 제도적 근거가 없다. 이에 향후 은행 예상 손실에 비해 대손충당금이나 대손준비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대손준비금 추가 적립을 요구하도록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급격한 금리 상승을 감안할 때 기업과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이 낮아지면서 은행의 자산 건전성 관리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광식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이번 조치로 당장 은행에게 추가 적립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은행들의 자산건전성 지표도 실제로 개선되고 있다”면서도 “(상환) 유예 등 조치로 손실이 어느 정도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으니 사전 대응 차원에서 감독규정을 개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자본 확충, 은행 배당 확대 요구와 상충 우려
문제는 대손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하게 되면 최근 주주들이 요구하고 있는 배당 확대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은행이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에게 환원하지 않고 대손준비금 등으로 쌓아놓게 되기 때문이다. 대손준비금은 회계상 보통주 자본으로는 인정하고 있지만 배당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무재표상으로는 배당가능이익의 감소 요인이 된다.
은행이 추가 대손준비금을 확충하게 되면 배당 재원은 줄어드는 만큼 은행으로선 난감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이익 규모를 언급하며 대출금리 인하를 연일 압박하고 있어 이익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배당 측면에선 마이너스 요인이다. 기준금리는 여전히 높은데 대출금리를 낮추려면 결국 은행이 가져가는 이익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배당 확대를 적극적으로 실시하려고 해도 사실상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