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1세대 애널리스트로 부침이 심한 증권 업계에서 리서치센터장만 16년을 지냈다. 1989년 대우경제연구소 증권조사부에 입사한 후 2018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을 끝으로 증권가를 떠나 이코노미스트로 활약 중이다.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증시에 대한 가감 없는 발언으로 여의도의 대표적 닥터 둠으로 꼽혔다.
그는 특히 종목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성향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지금 코스피 지수가 오른다, 내린다고 애널리스트들이 예측해도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는 건 앞서 선배 애널리스트들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발언했기 때문”이라며 “종목 애널리스트들은 모험을 하거나 시도하지 않고 무사안일에 빠져 있어 매도 리포트가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황 애널리스트들의 경우 회사나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분석들이 쌓이면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비관론을 받아들이게 된 반면 종목 담당들은 여전히 몸을 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도 리포트 발간 후 눈앞의 불편함을 의식해 리스크 앞에서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현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안이한 분석의 대표적인 예로 삼성전자(005930)를 꼽으며 주가가 지난해 초 대비 40%까지 빠졌는데도 매도 의견이 없는 건 문제라고 질타했다. 그는 “애널리스트들이 삼성전자의 하반기 이익률이 5% 줄어든다고 예상했지만, 주가는 30~40% 정도 빠졌다”면서 “주가 하락은 이익 감소 말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시장이 아니라 애널리스트들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질 시기에 매도 의견을 내기 보다 ‘좋은 주식’이라고 하는 건 평생 그 주식을 보유하라는 것 아니냐”면서 “삼성전자에 대해 20년 내내 매수 의견만 제시할 뿐 단 한 번도 비중을 축소하거나 매도 의견을 낸 애널리스트가 없는 건 문제”라며 탄식했다.
애널리스트들의 ‘책임 회피’ 성향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2000년대 초반 현대전자(SK하이닉스의 전신) 주가 폭락 당시 반도체 애널리스트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현대전자가 주당 4만원일 때 연말까지 8만원을 예상했던 애널리스트들이 1만원대가 깨지자 돌연 재무제표가 나쁘다는 이유로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2001년 주가가 250원으로 폭락했는데도, 애널리스트의 분석만 믿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에게 그 누구도 해명한 사람이 없었다.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고 넘어간 건 뻔뻔한 일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매도 리포트 기피 현상은 증권사보다 애널리스트의 책임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산업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회사 분석이 이뤄져야 하는데, 기업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쓰는 데 급급해 검증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특정 종목을 다룬 비슷한 내용의 리포트가 여러 개가 쏟아지는 건 함께 기업을 탐방해 똑같은 정보를 듣고 작성했기 때문”이라며 “회사에서 알려주는 정보를 해석해서 얹어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어 애널리스트들이 매도 리포트를 낼 실력도, 용기도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좋은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벽’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애널리스트의 자리를 걸면서 소신있는 분석을 하면 본인의 활동 영역이 넓어질 뿐만 아니라 후배들까지 매도 리포트를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서 “좋은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벽을 넘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