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지난달 말 3개월 만에 찾은 강원도 동해시는 아까시꽃 너머 산불 상흔이 오롯이 남은 채 재건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와 때를 맞춰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일제히 목청을 높여 ‘지역 경제 살리기’를 외쳤다. 낚시 명소 어달항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곰치국 전문점에 들어섰더니 한창 점심시간대인데도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식당 사장은 “40년간 이곳에서 곰치국을 끓였는데 산불 이후 문을 닫았다가 최근 다시 열었다”며 “이번에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는 후보가 지역경제를 바르게 이끌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령인구가 많은 경북에선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지방선거 직후 찾은 경북 영주시. 영주 우시장 인근서 만난 한 상인은 “뭘 해 먹고 살아야 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을 맞이한 시장은 상점 10곳 중 7~8곳이 셔터를 내렸다.
지방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지금도 타지로의 인구 유출은 가속화하고 있다. 그야말로 빈사 상태다. 호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호남 0~39세 인구는 올해 1분기 동안에만 7618명 순유출했다. 물가·금리·환율은 일제히 오르고 생산·소비·투자는 모두 감소하는 총체적 난국이다. 묘안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4%인데 이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8월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라고 한다.
당선인들은 침체의 늪에 빠진 지방을 되살려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당선인들이 모든 역량을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민 복리 증진에 쏟아부어도 위기를 제대로 벗어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만큼 절박하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재임이든 초선이든 냉철한 민심을 제대로 읽고 정치가 아닌 ‘내 집 살림살이 챙기기’에 매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좌파든 우파든 민생 복리를 위해서라면 이념적 색채를 줄이고 ‘실사구시’를 지향해야 한다. 팍팍한 민생이 너그러이 참아주리라는 안이한 생각과 판단은 애당초 머릿속에서 지워주길 바란다.
산적한 현안 어느 하나도 일부 지역 또는 지자체장의 힘이나 지혜로 풀 수 있는 게 없다. 한 예로 경기도와 광주광역시는 반도체 등 미래산업 유치와 광역교통망 확충, 경제·생활권 통합 등을 내걸었다. 이는 행정 단위를 뛰어넘는 초광역 협력으로 동반 성장의 동력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해결할 수 있는 숙제다. 이런 면에서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협의기구’와 같은 조직을 구성해 지역 발전 방안 마련과 실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역민들이 지방선거에서 당선인들에게 지지를 보낸 것은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준엄한 요구와 절박감을 담은 것이다. 앞으로 한계와 어려움도 있겠으나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지방선거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경제 위기를 비롯한 태풍에 들어와 있다. 정당의 정치적 승리를 입에 담을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위기의 시험대다. 당선인들은 지금까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모습에서 벗어나 지방자치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점이 있었는지 항상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를 통해 가라앉은 지역을 다시 살릴 수 있음을 성과로 증명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