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온 걸 후회해요. 가고 싶은 기업은 문과 직무를 안 뽑고, 문과 직무 뜨는 곳은 티오가 한 줌이네요...”
하반기 공개채용 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한 취업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인문계열 출신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의 고민이 줄을 잇고 있다.
상반기 취업 가뭄 이후 시작한 하반기 채용시장조차 대부분이 이공계열 학생들을 채용해 문과생들이 자리를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취업 가뭄이 이어지는 가운데 특히 문과 취준생들의 근심이 늘어가고 있다.
심각한 구직난에도 IT(정보기술)와 이공계 채용은 이어지고 있다. 문과 출신들에게도 디지털 역량을 요구하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어서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IT 역량을 중시하는 기업이 늘어나 문과 취준생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취업가뭄 비껴간 IT업계...문과에겐 다른 세상 이야기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기업이 채용을 대폭 줄여 상반기 취업률은 바닥을 찍었다. 반면 이런 와중에도 언택트 산업의 확대로 관련 업종의 구인은 크게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과 취준생들이 시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은 올 상반기 채용공고와 지난해를 비교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전 업종의 채용공고는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나 IT업종은 선방했다고 밝혔다. 전 업종 중 가장 공고 감소율이 낮은 곳은 ‘기관·협회’ (-0.2%)였으며, ‘IT·웹·통신’(-8.3%)이 바로 뒤를 이었다. 특히, 6월부터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9.6%, 6.5% 늘어나며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
사람인은 ‘IT·웹·통신’ 분야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소비, 문화 전반에서 언택트 바람이 불고 이에 따라 디지털 경제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오히려 성장 동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사회과학계열을 전공한 취준생 이 모씨(24·여)는 “상반기에는 공채가 거의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다”며 “IT업계의 채용공고를 봐도 지원할 수가 없다보니 더욱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나은 것 같지만 기업이나 직무가 한정적이라 경쟁률이 엄청나다”며 걱정했다.
하반기 채용도 트렌드는 ‘디지털’
심각한 구직난에도 기업의 IT 인재 찾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고,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IT 인재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언택트가 산업 전반에 자리잡아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IT 기업들은 이를 성장의 기회로 보고 인재 확보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쿠르트와 알바콜의 동시 조사 결과 ‘2020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트렌드’에서 대기업 절반 이상은 AI(인공지능)와 데이터 분야 디지털 직무에서 대졸 신입 채용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업무 디지털화, 비대면화’(39.5%), ‘신사업을 위한 R&D인재 확보 차원’(16.4%)이 꼽혔다.
이런 현상은 하반기 채용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트렌드 앞에 문과생들은 한정된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심정으로 채용 공고에 지원하는 상황이다.
전통적인 문과 직무라 불리던 은행 업계도 디지털 인재 확보에 나섰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경우 상반기 공채일정을 미루면서도 디지털 인력 채용을 위해 수시채용을 진행했다.
하반기 공채 논란이 있던 KB국민은행은 지원 과정에 온라인 디지털 교육과정(TOPCIT) 사전연수 총 31시간을 이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연수 내용으로 시험도 치러야한다. 국민은행 측은 채용 디지털이 금융에서 대세가 되다 보니 디지털 활용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이런 과제들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하반기 채용 서류접수를 마감한 SK그룹의 경우 문과 직무가 극히 적어 대부분의 문과 지원자가 마케팅직무로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한 취업준비생은 “자소서 포털 기준 벌써 1900명...문과는 쓸 곳이 여기 뿐”이라는 글을 올려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취준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카카오의 경우에도 채용 과정에 코딩테스트가 필수라 문과생들은 지원도 못한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디지털 역량도 스펙이 된 문과생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디지털 역량은 문과생들에게 하나의 스펙으로 자리잡았다. 코딩이나 파이썬 등을 배우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메가스터디 IT 아카데미 관계자는 “기업 채용 트렌드가 코딩테스트 등 IT 역량을 시험하다 보니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취업준비를 위해 찾고 있다”며 “특히 채용 트렌드가 변하면서 비전공자 수강생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의 경우 경쟁률이 치열하다. 선발되면 알고리즘과 프로그래밍언어 등을 교육비를 지원받으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전공자들에게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스펙’으로도 작용한다. 이 때문에 아카데미 입학을 위한 사교육이 생겨나고 따로 스터디를 꾸릴 정도다.
취업 준비를 위해 파이썬 스터디를 꾸렸던 신 모씨(29·남)는 “이미 스펙 과열인 문과생들에게 디지털 역량도 하나의 스펙이 된 거 같다”고 말했다.
한양대 커리어개발센터 관계자는 “채용 시장에서 디지털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과생들이 단기간에 기업이 요구하는 디지털 역량을 갖추기란 쉽지않다”며 “관련 수업을 듣는 등 오랜시간 공을 들여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 스냅타임 정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