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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비결은 간단해요. 연극을 포기하지 않은 거죠.”
극단 산울림이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았다. 임영웅(83) 극단 산울림 대표에게 어려운 연극계 현실 속에서도 반세기 동안 극단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답은 짧고 간결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역사가 돼요. 지금도 ‘산울림의 연극은 믿고 본다’는 관객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죠.”
임 대표의 인생은 극단 산울림의 역사 그 자체다. 1969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국 초연을 올린 것을 계기로 극단 산울림의 역사도 함께 시작했다. 창단 멤버는 배우 김성옥·함현진·김인태·김무생·사미자·윤소정·손숙·윤여정 등. 이후 박정자·윤석화·김용림·이용녀·오지명·전무송·주호성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극단을 거치며 임 대표와 함께 한국 연극사의 한 장면을 써왔다.
◇한국 연극의 대부…“고맙고 영광”
임 대표는 1948년 서라벌예술대 연극영화과에서 연극 연출을 전공한 뒤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1965년 동인극장에 오른 연극 ‘전쟁이 끝났을 때’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1966년에는 예그린가무단의 연출로 한국 최초의 뮤지컬로 여겨지는 ‘살짜기 옵서예’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1969년부터 극단 산울림을 이끌어왔다.
한 평생 연극과 함께 해온 그에게는 ‘한국 연극의 대부’라는 칭호가 따라다닌다. 2016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 받아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에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임 대표는 “‘연극계의 대부’라니 고맙고 영광이다”라며 “그동안 과분한 상도 많이 받았고 하고 싶었던 연극도 원 없이 했으니 고마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연극을 하며 한 해 한 해 보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1980년대에는 연극만 하며 살 수 없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때 임 대표의 아내인 불문학자 오증자 교수가 전용극장을 짓자는 제안을 했다. 1985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인근에 세운 소극장 산울림이다.
임 대표는 “대학로에는 이미 많은 극장들이 있었던데다 홍대 주변의 독특한 문화적 분위기도 있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결정이었다”고 소극장 개관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극단 산울림은 관객 다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문화 소비층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중장년층 여성 관객을 극장으로 인도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시몬드 드 보봐르의 ‘위기의 여자’, 드니즈 샬렘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을 꾸준히 올려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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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돌 맞은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
극단 산울림은 올해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대표 레퍼토리 ‘고도를 기다리며’의 공연과 전시·토크 콘서트 등을 함께 개최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적인 부조리극으로 1969년 임 대표는 국내서 초연한 뒤 50년간 약 1만5000회 공연, 22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부조리극은 난해하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는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다. 임 대표는 “이 작품은 그렇게 어렵기만 한 건 아니다”라며 “처음 읽었을 때는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점점 그냥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약도 없이 뭘 저렇게까지 기를 쓰고 기다리나 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연은 46년 만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정동환·안석환·김명국·박용수·이호성·박윤석·정나진 등 지난 50년간 ‘고도를 기다리며’를 함께 만들어온 배우들이 함께 한다. 임 대표가 이번에도 연출을 맡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시간씩 배우들 디렉팅도 하고 그랬는데 올해는 쉽지가 않다”며 “워낙 이 작품을 잘 아는 배우들이라 알아서 잘들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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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사람을 그리는 것”
극단 산울림의 지난 50년을 모은 기록, 자료들을 통해 임 대표의 삶과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 ‘소극장 산울림과 함께 한 연출가 임영웅 50년의 기록 전’(5월 7~25일 마포아트센터 스튜디오3)도 만날 수 있다. 배우 정동환·안석환·박정자·손숙·윤석화 등이 함께 하는 토크 콘서트 ‘극단 산울림, 50년의 역사와 현재’(5월 18·26일, 6월 1일 소극장 산울림)도 세 차례에 걸쳐 열린다.
연극계는 최근 블랙리스트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임 대표 또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 임 대표는 “극단 산울림과 산울림 소극장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힘들어도 지금의 극장장과 예술감독이 뒤를 이어 계속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임 대표의 딸 임수진이 산울림 소극장 극장장을, 아들 임수현이 극단 산울림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또한 임 대표는 “어려운 연극계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정부와 문화계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연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람을 그리는 것”이라고 답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임 대표는 “말이나 글이 없었을 때도 연극은 있었다”며 “인간의 인생처럼 매일매일 사람들과 부딪히며 공연을 올리는 것이 연극만이 주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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