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산울림 50년…포기하지 않으니 역사가 되더라"

장병호 기자I 2019.04.29 06:00:00

''한국 연극의 대부'' 극단 산울림 대표
올해 창단 50주년…공연·전시로 기념
내달 9일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
"인간의 인생 같은 공연, 연극의 매력"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 객석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50년간 극단 산울림을 이끌어온 임 대표는 “요즘 연극계 후배들도 어려운 게 많을 것”이라며 “정부와 문화계가 연극계에 더 관심을 가져야 돈 걱정 덜하고 좋은 작품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사진=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비결은 간단해요. 연극을 포기하지 않은 거죠.”

극단 산울림이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았다. 임영웅(83) 극단 산울림 대표에게 어려운 연극계 현실 속에서도 반세기 동안 극단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답은 짧고 간결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역사가 돼요. 지금도 ‘산울림의 연극은 믿고 본다’는 관객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죠.”

임 대표의 인생은 극단 산울림의 역사 그 자체다. 1969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국 초연을 올린 것을 계기로 극단 산울림의 역사도 함께 시작했다. 창단 멤버는 배우 김성옥·함현진·김인태·김무생·사미자·윤소정·손숙·윤여정 등. 이후 박정자·윤석화·김용림·이용녀·오지명·전무송·주호성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극단을 거치며 임 대표와 함께 한국 연극사의 한 장면을 써왔다.

◇한국 연극의 대부…“고맙고 영광”

임 대표는 1948년 서라벌예술대 연극영화과에서 연극 연출을 전공한 뒤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1965년 동인극장에 오른 연극 ‘전쟁이 끝났을 때’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1966년에는 예그린가무단의 연출로 한국 최초의 뮤지컬로 여겨지는 ‘살짜기 옵서예’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1969년부터 극단 산울림을 이끌어왔다.

한 평생 연극과 함께 해온 그에게는 ‘한국 연극의 대부’라는 칭호가 따라다닌다. 2016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 받아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에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임 대표는 “‘연극계의 대부’라니 고맙고 영광이다”라며 “그동안 과분한 상도 많이 받았고 하고 싶었던 연극도 원 없이 했으니 고마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연극을 하며 한 해 한 해 보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1980년대에는 연극만 하며 살 수 없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때 임 대표의 아내인 불문학자 오증자 교수가 전용극장을 짓자는 제안을 했다. 1985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인근에 세운 소극장 산울림이다.

임 대표는 “대학로에는 이미 많은 극장들이 있었던데다 홍대 주변의 독특한 문화적 분위기도 있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결정이었다”고 소극장 개관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극단 산울림은 관객 다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문화 소비층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중장년층 여성 관객을 극장으로 인도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시몬드 드 보봐르의 ‘위기의 여자’, 드니즈 샬렘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을 꾸준히 올려 주목을 받았다.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벽에는 그동안 극단 산울림의 연극에 출연한 배우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50돌 맞은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

극단 산울림은 올해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대표 레퍼토리 ‘고도를 기다리며’의 공연과 전시·토크 콘서트 등을 함께 개최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적인 부조리극으로 1969년 임 대표는 국내서 초연한 뒤 50년간 약 1만5000회 공연, 22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부조리극은 난해하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는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다. 임 대표는 “이 작품은 그렇게 어렵기만 한 건 아니다”라며 “처음 읽었을 때는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점점 그냥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약도 없이 뭘 저렇게까지 기를 쓰고 기다리나 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연은 46년 만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정동환·안석환·김명국·박용수·이호성·박윤석·정나진 등 지난 50년간 ‘고도를 기다리며’를 함께 만들어온 배우들이 함께 한다. 임 대표가 이번에도 연출을 맡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시간씩 배우들 디렉팅도 하고 그랬는데 올해는 쉽지가 않다”며 “워낙 이 작품을 잘 아는 배우들이라 알아서 잘들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프로그램북(사진=마포문화재단).


◇“연극은 사람을 그리는 것”

극단 산울림의 지난 50년을 모은 기록, 자료들을 통해 임 대표의 삶과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 ‘소극장 산울림과 함께 한 연출가 임영웅 50년의 기록 전’(5월 7~25일 마포아트센터 스튜디오3)도 만날 수 있다. 배우 정동환·안석환·박정자·손숙·윤석화 등이 함께 하는 토크 콘서트 ‘극단 산울림, 50년의 역사와 현재’(5월 18·26일, 6월 1일 소극장 산울림)도 세 차례에 걸쳐 열린다.

연극계는 최근 블랙리스트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임 대표 또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 임 대표는 “극단 산울림과 산울림 소극장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힘들어도 지금의 극장장과 예술감독이 뒤를 이어 계속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임 대표의 딸 임수진이 산울림 소극장 극장장을, 아들 임수현이 극단 산울림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또한 임 대표는 “어려운 연극계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정부와 문화계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연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람을 그리는 것”이라고 답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임 대표는 “말이나 글이 없었을 때도 연극은 있었다”며 “인간의 인생처럼 매일매일 사람들과 부딪히며 공연을 올리는 것이 연극만이 주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산울림 소극장 건물(사진=마포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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