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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로만 말하던 전직 판사의 '못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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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I 2018.11.28 0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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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정재민|312쪽|창비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 솜사탕 장수가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섰다. 한밤중에 트럭을 몰고 가다 길가의 일가족을 치고 그대로 벽을 들이받은 사고의 피의자였다. 피해자 가족은 아내만 살아남아 피를 토하는 고통으로 살게 됐다. 그러나 솜사탕 장수도 사고로 두 다리가 잘렸고 생계가 위태로운 상태였다.

재판을 담당한 판사는 어떤 마음으로 판결했을까. 그는 “글만 보고 머릿속으로 가늠하는 것은 차라리 쉽다”며 “두 다리가 잘려나간 채 휠체어에 앉아 두려운 눈빛으로 떨고 있는 왜소한 남자를 눈앞에서 마주하면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판사가 내리는 냉정한 양형도 오랜 고민 끝에 나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판사생활을 포함해 10여 년을 법조인으로 살았던 저자는 ‘사는 듯 사는 삶’을 위해 지금은 방위사업청에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쓴다. 책은 법조인으로 사는 동안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이유로 숨겨야만 했던 인간적인 고민을 글로 담아낸 첫 산문집이다.

저자의 고민은 양형문제와 구속수사 논란, 한국사회에 만연한 마녀사냥과 도덕주의 문화에까지 뻗어 있다. “우리 사회가 도덕을 꺼내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나쁜 놈’을 지목하기 위해서”란 뼈아픈 지적도 있다. 사법농단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요즘. 책장을 넘길수록 인간적인 고민으로 재판에 임하는 판사가 여전히 남아 있길 바라는 기대가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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