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집단 사망 비극 재발 막으려면…"돈에 병든 병원부터 치료"

이연호 기자I 2017.12.19 05:00:00

지난해 의료분쟁 조정 신청 1907건...5년간 약 3배 증가
의료분쟁 상담건수도 증가세..지난해 4만6735건 접수
수익성 천착·보건당국 감독 소홀·폐쇄적 의료계가 화근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중치료실(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의료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의료사고로 인한 분쟁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 및 치료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과거와 달리 환자와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책임소재를 물으려는 노력이 확산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의료사고 예방을 위해선 고질적인 의료계 노동력 착취나 수익성에 매몰된 병원 시스템·구조, 의료계 자정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5년간 의료분쟁 조정 신청 현황. 표=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 ‘신해철법’ 시행 1년 지났지만 의료사고는 안 줄어

18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에 따르면 지난 2012년 503건이던 의료분쟁 조정 신청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907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의료분쟁을 소송 외적으로 해결하는 대표 방식 중 하나인 의료분쟁 조정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에서 의료분쟁 당사자 간 타협을 이끌어 내는 절차다. 의료분쟁 상담 건수도 연평균 11.7% 증가해 지난해 4만6735건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접수됐다.

사망 등 중대 의료사고가 접수되면 자동으로 의료분쟁 조정 절차가 개시되도록 한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11월 30일 시행된 이래 1년이 지났지만 좀처럼 의료사고는 줄어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2년 4월 빈발하는 의료분쟁 조정을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출범하면서 의료분쟁 조정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마련됐지만 사후적 개입이 아닌 의료사고의 사전적 예방을 위해선 후진적인 의료기관 시스템과 폐쇄적인 의료계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히루에 보는 환자수가 선진국의 2~3배가 넘는다. 대기환자가 밀려 있으면 진료시간이 짧아질수 밖에 없는데다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아무래도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오후 폐쇄된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입구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지난 16일 이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선 치료를 받던 미숙아 4명이 잇따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수익성 천착·보건당국 감독 소홀·폐쇄적 의료계가 화근

이 같은 차원에서 전문가들은 의료사고의 원인과 대책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다. 먼저 수익성에 천착하는 의료기관들의 잘못된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의료사고는 재발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의료기관이 적정한 의료 인력을 확보하지 않은 채 시설이나 장비에만 투자를 하거나, 의사가 간호사에게, 간호사가 간호조무사에게 업무를 임의로 위임하는 등의 행위가 알게 모르게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공동대표는 “환자가 많으면 의사를 더 채용해야 하는데 의료기관들이 수익성을 쫓다 보니 제일 중요한 인력에 대한 투자는 뒷전이게 되고 결국 노동력 착취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건당국의 무성의한 태도도 유사한 의료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김 대표는 “지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이후 정부가 환자의 안전 관리를 위해 입원료 수가를 올려 주는 등 의료기관에 재정적으로 보상 수준은 높여줬지만 병원 시스템이 환자 안전을 담보하도록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관리는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목동병원에서만 수년간에 걸쳐 좌우가 바뀐 엑스레이 필름 영상으로 축농증 환자 500여 명을 진료하고, 결핵에 걸린 간호사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날벌레가 든 수액을 투여하는 등의 터무니없는 의료사고가 집중 발생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문화의 의료계가 자정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의료사고를 근절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계는 진료과별로 분명한 장벽이 있고 교수급 의료진들 아래에서 종속적인 구조로 일하는 관료화되고 폐쇄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며 “이런 문화로 인해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서로 쉬쉬하고 덮으려고만 하다보니 원인과 처방이 나오지 않고 똑같은 실수들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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