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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3일이 지났으니 앞으로 이틀 안에 거금을 만들어야 한다. 납치범들이 내게 돈을 요구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내가 그들에게 돈을 빌린 것도 아니고 납치된 영업이사가 호프집에 투자할 때도 전혀 그 같은 내용이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매월 급여를 받고 매년 수익에서 투자 비율에 따라 배당을 받기로 돼있다. 투자자인 나와 한국인 상무, 그리고 영업이사 3명 중 한 사람이 투자금을 회수하고 싶을 때는 3명이 협의 한 후 2명 이상이 동의하면 투자금을 반환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따질 수 없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영업이사의 신변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도 치안 상태가 매우 불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중국 베이징에서 말이다. 적어도 당시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쳐졌다. 당해본 사람만 아는 일이다. 밤에는 택시 타기도 겁이 났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장을 여러 차례 목격하지 않았는가? 차 길을 아예 막아 놓고 접촉사고를 낸 운전사들이 혈투를 벌이고 있는데도 아무도 말리지도 신고하지도 않는다. 언쟁 끝에 주먹 싸움이 벌이다 상대 주먹을 맞고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사정없이 발로 내리치는데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 수호지 장면들이 연상되는 현장들.
하여튼 돈을 만들어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몇몇 지인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해 봤으나 허사였다. 핀잔뿐이다. 빌려줄 돈도 없지만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빌려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호프집도 당장 문 닫아야 할 형편이면서 빌린 돈을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고민 고민 끝에 얼마 전 호프집을 인수하고 싶어 했던 중국인을 찾아 갔다. 그간에 사정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설명하고 납치범들이 요구하는 액수에 조그만 더 생각해주면 호프집을 넘긴 후 한국으로 돌아 기겠으니 제발 호프집을 인수해 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가까스로 그가 이전에 제시한 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는 액수에 호프집을 넘기기로 했다. 다음날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받았다. 납치범들이 연락책으로 지정한 호프집 조선동포 직원에게 “돈을 준비했으니 만나자”고 전화했다. 밤 11시 주중 북한 대사관 근처 공원에서 공작원들이 하는 것처럼 비밀리에 돈이 든 손가방을 건네주고 영업이사를 만날 수 있었다.
영업이사는 말없이 술잔만 비웠다. 나와 한국인 상무가 아무리 질문해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어디 있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입을 닫았다. 그는 거나하게 취하자 “너무 피곤하니 내일 보자”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무리 기다려도 식사하러 오지 않아 숙소에 가보니 영업이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편지 한 장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까지 연락이 없다. 지금도 조선동포들이 많이 모이는 대림동, 가리봉동 등지에 가면 영업이사 생각이 난다. 그곳에 가면 어쩌다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살아 있다면 그는 지금 틀림없이 중국 관련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사업 파트너이자 통역을 하는 조선동포와 어울릴 것이 틀림없으니 조선동포들이 모이는 곳에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서울 대림동 조선동포 촌이다. 주로 중국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난다. 교통도 좋고 식사나 술값도 비교적 저렴하다. 그곳에 가면 초창기 중국에 가서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하루 빨리 다시 중국에 가서 사업을 벌이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최소한 지난 시절 중국서 날린 돈의 10배는 벌어와야지 하고 주먹을 쥔다. 2호선 대림역 6, 7, 8, 9, 10, 11번 출구 근처 일대가 연변 시가지처럼 변하고 말았다. 음식점, 상점 간판이 간자(簡字)체 한자 일색이다. 주인이나 직원들도 대부분 조선동포들이다. 간혹 한국어를 제법 구사하는 한족도 있다. 주말에 이곳에 가면 한국에 ‘코리안 드림’이라는 꿈을 안고 온 우리 조선동포들의 삶이 보인다. 그들이 중국에서 어떻게 살다 왜 이곳에 왔으며 그들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가름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 갈 때마다 재기의 다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썩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한(恨)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회 계속>
-중국 전문가. 전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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