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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30대 후반의 직장인 K씨. 그는 최근 들어 내 집 장만을 꿈꾸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집 사는 게 늦을수록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이다.
K씨는 주거래은행을 찾아 대출 상담을 했다. 창구 상담원은 5년 고정금리에 비거치식(처음부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 방식) 상품을 추천했다. 대출금리는 4% 중반대. 시중의 금융채 금리 2% 초반대를 기준으로 2% 중반대의 자체 가산금리가 붙어서 나온 수치였다. 그나마 이 정도는 나았다. 12개월 변동금리로 빌리면 금리 5%가 넘는 것으로 나왔다.
K씨는 뭔가 이상했다. 대출 받아 집을 샀다는 지인들은 모조리 2%대를 적용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서다. 창구 상담원은 “2015년 초부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실제 2%대 상품이 주류를 이뤘다”면서 “올해 들어 대출금리는 계속 올랐다”고 했다.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였다. 비거치식 분할상환 모기지론(부동산을 담보로 장기주택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의 금리도 우대금리를 적용받을 경우에 한해 3% 후반대로 계산됐다.
은행 상담원은 “문재인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앞으로 대출금리가 더 오를 수도 있다” 등의 조언을 했고, K씨도 일단 집을 살 계획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3%대 가계대출 금리 상품 급증
가계대출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눈덩이’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시중은행이 대출을 옥죄는 건 불가피하다는 평가와 함께 주택 실수요자들의 부담이 덩달아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현재 전체 예금은행 가계대출 중 3% 미만 금리의 비중은 25.4%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 2월(8.8%) 이후 2년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2%대 가계대출 금리가 본격화한 건 2015년 초부터다. 당시 여권이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한은도 기준금리를 사상 처음 1%대로 인하했던 때다. 줄곧 한자리대 비중이었던 2%대 금리의 대출상품은 2015년 3월 갑자기 40.7%로 급증했다. 지난해 7~8월 두달간 70% 중반대를 상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갑자기 20%대 비중으로 내려앉더니, 추가로 더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신 3%대 대출금리가 일상이 됐다. 4월 3~4%대 금리의 대출 비중은 64.6%. 2015년 2월(81.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5%대 고(高)금리 대출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4월 5~6%대 금리 비중은 2.2%를 기록했다. 2014년 9월(2.4%) 이후 가장 높다.
대출금리는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가계대출의 부실화”라고 했다. 특히 취약계층의 부실화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이 연구원은 경고했다.
금리도 금리이지만, 무엇보다 대출자들을 망설이게 하는 건 원금도 함께 갚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다른 시중은행의 한 상담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가계부채를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만큼 앞으로 거치식(원금은 그대로 두고 이자만 갚는 방식) 대출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매달 이자만 갚으면서 집값이 오르면 갈아타는 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예금·적금 금리는 오히려 하락
일각에서는 대출금리는 오르는데 예금금리는 제자리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예금은행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4월 1.56%를 보였다. 전월(1.58%) 대비 0.02%포인트 더 내렸다. 2~3년짜리 정기예금, 3~4년짜리 정기예금의 금리도 각각 1.58%, 1.66%에 불과하다.
목돈 마련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정기적금(3~4년)의 경우 4월 금리는 2.04%를 기록했다. 지난해 중반부터 2% 안팎을 오가고 있다. 지난해 중반 이전만 해도 정기적금 금리는 2% 중반대를 넘나들었다. 최근 부쩍 커지고 있는 ‘예대마진 이자장사’ 논란의 주요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