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가 펄쩍펄쩍 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적인 동반자’라 굳게 믿었던 구글에게 뒷통수를 맞은 거다. 애플과 구글은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아니었다. 애플이 만든 훌륭한 기기에 구글은 걸맞은 소프트웨어를 띄웠다. 기술혁신에서 음과 양의 조화. 이보다 완벽한 궁합이 어디 있겠는가. 둘도 없던 ‘동맹’에 금이 간 건 구글의 발빠른 행보 때문. 2007년 말 안드로이드를 꺼내놓으며 휴대기기 세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부터다. 측근들이 안드로이드의 위험성을 누누이 말해도 미동도 않던 잡스는 이 시점에서 광분했다. “왜 구글이 휴대폰이지? 애플은 검색사업에 눈도 돌리지 않았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잡스. 참고로 ‘사악해지지 말자’는 구글의 회사 모토다.
애플의 보복이 시작됐다. 3년여간의 법적 해결책을 모색한 끝에 적군을 재판정에 세우기로 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정작 애플이 걸고넘어진 건 구글이 아니라 삼성이었던 거다. 어쨌든 2011년부터 삼성을 상대로 한 애플의 특허침해소송은 마치 잡스의 ‘성질’처럼 진행됐다. 세계 10여곳에서 융단폭격처럼 쏟아졌다. 최고의 관심 대상은 미국 새네제이에서 열린 재판. 올해 열린 2차 소송에선 삼성이 9억 3000만달러를 배상하란 판결이 나왔다. 겉모양은 그럴 듯 했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IT계 공룡들의 각축전이 시장을 넘어 법정으로 확장된 것이려니들 했다. 그런데 여기에 애플의 다른 속내가 있다면?
애플의 심중을 간파한 건 IT 전문지의 노련한 기자였다. 책은 애플의 속셈에 대해 그가 빼낸 길고 치밀한 분석이다. “애플의 궁극의 맞수는 삼성이다? 천만에. 구글이다.” 애플이 궁극의 라이벌인 구글을 견제하기 위해 삼성과의 대리전을 선택했다는 것. 저자는 심증으로 시작한 의심에 물증을 붙이는 데 16년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애플과 구글 양사의 실무자 수백명이 인터뷰에 동원됐다.
▲“우리 공적은 마이크로소프트였는데…”
잡스는 구글을 공동창업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를 친구로 여겼다. 브린과 페이지도 그랬나 보다. 구글이 신생기업이던 2000년경 돈줄을 쥔 투자자들이 브린과 페이지에게 능란한 CEO를 찾으라고 압박하자 이들은 이렇게 말했단다. “잡스가 아니면 고려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 일은 잡스가 실리콘밸리의 어린 친구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애플과 구글의 환상적인 결합은 한동안 계속됐다. 각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확실한 영역을 구축한 터라 협업할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게다가 둘 사이엔 마이크로소프트(MS)란 공동의 적까지 있지 않았나. 그러나 두 회사를 ‘영적으로’ 묶어줬던 ‘꿈꾸는 미래’란 목표는 원수가 된 상황에선 먼저 물어야 할 먹잇감이 됐다. 플랫폼 지배자라는 단 하나의 권좌를 앞에 두고 동맹은 철저히 무너졌다. 애플은 소비자의 원성을 무시하고 아이폰에서 구글 지도를 빼버렸다. 구글 검색엔진도 날렸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의 숙적’이던 MS의 검색엔진 ‘빙’까지 들여놨다는 것.
▲적의 적은 친구?
그런데 어째서 삼성이 애플의 법정 타깃이 됐을까. 구글과 송사를 벌여봤자 이기긴 어렵다는 게 애플의 판단이었다. 삼성은 애플의 먹잇감으로 제대로 된 조건을 갖췄다. 세계 최대의 안드로이드폰과 태블릿을 제조하는 회사. 다시 말하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시장점유율에 가장 위협이 되는 도전자다. 그렇다면 삼성과 구글의 사이는 괜찮을까. 삼성에게 구글은 ‘적군의 적’이어서 친구가 된 묘한 관계다. 그래서 걱정도 깊다. 세계서 가장 잘 나간다는 기기를 무기로 쥐었다고 하더라도 예전 애플이 했을 고민을 안고 있는 거다. ‘구글 소프트웨어를 탑재하지 않았더라도 소비자는 우리 휴대폰과 태블릿을 구매할까.’
이 지점에서 저자는 새로운 동맹관계의 탄생을 예고했다. 우선 소비자는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막말로 아마존 앱 스토어도 구글만큼은 되지 않느냐는 거다. 게다가 중요한 건 지금 삼성에 구글이 필요한 것처럼 구글에도 삼성이 필요하다는 것. 안드로이드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삼성폰에 구글 앱이 없다? 이는 구글 모바일 광고 중 절반이 사라진다는 얘기와 같다.
▲IT 전쟁사는 반복·진화한다
‘애플과 구글의 싸움은 이전 MS와 애플이 치러온 전쟁에서 더 진화했다.’ 저자의 주장이 이렇다. IT산업의 미래상은 이 지점에 그려진다. 삼성·구글·애플 등 디지털 공룡들이 찍고 다닐 족적. 사실 이 그림은 일반인들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대중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이미 TV 시청시간을 넘어섰고, 뉴스·영화·책·음원 등 콘텐츠 대부분은 구글과 애플의 플랫폼에 진지를 구축했다. 이런 상황이니 목표는 오히려 명확하다. 온라인 광고수익? 모바일기기 판매수익? 아니다. 콘텐츠 플랫폼 점령이다.
하지만 저자가 볼 때는 이 과정은 제목 그대로 ‘도그파이트’, 개싸움이다. 오래 전에 시작됐으나 곧 끝난다는 장담은 할 수 없다. 갈수록 맹목적이고 치열하며 위험하고 더러워질 수 있다. 어차피 IT계는 “고함·절규·모략·낙심·염려·공포로 점철돼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싸움이 소모전은 아니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돈 많은 회사들이 흔히 벌이는 실랑이 그 이상인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지독한 기업전쟁’이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