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연출. 여성 연출가 박혜선(43)이 선보이는 작품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섬세’와 ‘대담’. 얼핏 보면 상반되는 단어지만 박 연출의 작품에는 두 가지 이미지가 공존해 있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박 연출만의 강점이다. 2008년엔 연극 ‘억울한 여자’로 ‘한국연극 베스트7’과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했다. ‘억울한 여자’가 초연되던 당시 방한한 쓰시다 히데오 작가는 작품을 본 후 “작가의 의도를 120% 살려낸 연출력”이라고 만족감을 표하기도 했다.
2011년 음악극 ‘에릭사티’에선 연기와 노래, 춤, 7인조 오케스트라 등으로 실험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가을 소나타’(2009), ‘아내들의 외출’(2012), ‘그 집 여자’(2013) 등을 통해 주로 여성의 이야기를 다뤄왔던 박 연출이 이번엔 타지에 사는 한국인들의 외로움을 끄집어냈다. 21일까지 서울 동숭동 정보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웰즈로드 12번지’를 통해서다. 박 연출에게 수상의 기쁨을 안겼던 히데오 작가의 최신작(2013)이다. “관객들이 ‘내 얘기구나’ 하면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선택하게 됐다”는 게 박 연출의 설명이다.
자신도 고등학교 졸업 후 캐나다로 유학을 가면서 외국생활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누구보다 타지에 사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작품은 영국 런던의 한식당 ‘아리랑’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런던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하거나 여행 온 한국인 10명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그렸다. 본모습을 감추려는 인간의 불안과 외로움, 자격지심 등을 소소하게 담아냈다.
“작품 속 이야기는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극 중 ‘창피하니까 어디 가서 한국사람이라 하지 말고 일본인인 척해’ 이런 대사도 나온다. 그런 모습까지 가감 없이 다 보여주고 싶었다. 무대를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 각성하고 생각해보자는 거다.”
각자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만 ‘다르다는 건 틀린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곳곳에서 전한다. “나만 생각하고 있으면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 있지만 저 벽 너머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게 이 작품의 마지막 대사이자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