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부동산가격은 결코 떨어질 수 없다.” “무슨 소리냐, 부동산 신화는 허상일 뿐이다.” 한국의 강남 집값 버블(거품) 논쟁이 아니다.
미국의 전문가, 부동산업계, 투자가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 주택가격 버블 논쟁이다. 저금리를 타고 고공 행진을 벌이던 미국의 집값이 최근 조정을 받자 ‘버블(거품) 붕괴론’과 ‘부동산 불패론’이 맞서고 있다.
◆규제 강화로 주택 공급 제한
미국의 경제 전문 잡지 포천은 최근 미국 부동산시장에 퍼져 있는 ‘부동산에 대한 신화’에 대해 소개했다. 우리로 치면 부동산 불패론에 해당한다. 그 근거는 첫째, 님비현상(nimby syndrome·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이기주의)과 각종 건축 규제 강화로 주택 공급이 제한돼 집값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
미국의 근교 주택 주민들은 새로운 주택단지가 들어설 경우 주거여건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신규 주택 건설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 들여 주택 건설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마치 서울 강남의 재건축 규제로 강남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논리와 비슷하다.
둘째, 저금리는 집값을 상승시키거나 최소한 하락을 예방한다는 것. 셋째, 고용시장이 좋은 지역은 집값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한국과 달리 미국의 주택시장은 지역적인 특성이 강해 전체 경기의 영향보다는 지역 경제의 영향을 더 받는다. 넷째, 80년대 말~90년대 초반 주택시장의 불황을 경험한 건설업체들이 주택 공급 물량을 자율적으로 조절, 불황을 예방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부동산 불패론 근거 없다” 버블 논쟁 확산
그러나 부동산 불패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님비현상에 의한 규제 강화는 이미 70년대부터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 규제가 강화됐다고 해도 새로운 신규 주택지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저금리에 의한 집값 상승도 금리 상승으로 힘을 잃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근로자의 임금 인상 폭도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에 집값 상승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반론이다. 미국은 도심 슬럼화, 인종 갈등을 피해 중산층이 교외로 대거 이주했기 때문에 지역경제와 주택시장의 상관관계가 매우 약해졌다.
포천지의 숀 톨리 편집장은 “주택업자들은 이윤이 없어질 때까지 공급 물량을 계속 늘리기 때문에 자율 조정은 불가능하다”며 “일부 전문가들이 집값 상승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집을 판 뒤 가격이 하락하기를 기다리는 버블시터(Bubble Sitter)도 미국에서는 늘어나고 있다.
◆경기 논쟁이 초점… “美 집값 급락하면 한국 집값 동반하락 가능성”
미국의 부동산 논쟁은 우리 못지않게 격렬하다. 하지만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정책은 없다. 서강대 김경환 교수는 “선진국 중에서 정부가 직접 개입, 가격 통제정책을 펴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집값 논쟁이 미국의 경기, 더 나아가 세계 경기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급격한 집값 하락은 역(逆) 부(富)의 효과(negative wealth effect)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것. 역 부의 효과는 집값이 하락하면 자신의 자산이 줄어들었다고 판단, 소비를 줄이는 현상이다. 영국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호에서 “2000년대 초반 기술주 주가가 폭락한 이후에도 미국의 경제가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배경은 집값 상승이었다”며 “집값 하락은 미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의 해지우스는 “집값이 오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2007년 미국의 GDP성장률이 0.75%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집값이 하락하면 미국의 내수 침체로 이어지면서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일본, 한국, 중국 등 다른 나라 경기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미국 집값이 급락한다면 대미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도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등 심각한 타격을 받아, 우리 집값도 동반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