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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US스틸과 고려아연

이준기 기자I 2025.03.26 05:00:00

美 국가기간산업 보호 취지, US스틸의 일본 매각 저지
전략광물 핵심기업 고려아연, 적대적 M&A 위협 지속
韓 정부 언제까지 침묵할까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지난 1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신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대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불허했다. 이어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현 미 대통령 역시 최근 이시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직접적인 인수 대신 ‘일본의 미국 철강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라는 방식으로 합의를 끌어냈다. 민주·공화 양당 정부 모두 149억달러(약 18조 3000억원) 규모의 이 거래에서 US스틸의 외국 소유권 이전을 실질적으로 저지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인수를 시도한 기업이 적대국이 아닌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의 기업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가기간산업 보호를 위해서라면 우방국 기업의 인수조차도 저지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철강 산업이 국가안보와 경제 자립의 핵심이라는 인식 아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심사 과정에서도 이 거래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반면 한국의 고려아연은 MBK파트너스의 인수 시도에 맞서 현재 고전 중이다. 고려아연은 세계 최대 아연 제련업체로 최근 중국이 수출통제를 강화한 인듐, 비스무트 등 전략광물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기업이다. ‘아연-연-동 통합공정’이라는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미국으로의 인듐 수출량은 미국 수입 비중의 29%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공급원이 되고 있다.

MBK의 인수 시도에 따른 가장 큰 우려는 중국 자본과의 연관성이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MBK의 주요 출자자 중 하나로 중국투자공사(CIC)가 포함돼 있다고 지적하며 인수가 이뤄질 경우 핵심 광물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MBK 측은 중국 자본 비중이 5% 안팎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비중이 아니라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중국 자본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 자체다. 전략광물과 핵심기술의 안보 측면에서 중국 자본의 개입은 그 규모와 관계없이 심각한 우려 사항이다. 이미 해외 기업의 지분 참여 후 기술 유출은 과거 입증된 사실이다.

더구나 미 의회에서도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에릭 스왈웰 미 연방하원의원은 “고려아연은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미국의 핵심 광물 공급망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며 고려아연의 기술과 공급망이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9월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했고 두 차례의 산업기술보호전문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2024년 11월 이 기술이 국가핵심기술 및 국가첨단산업기술로 최종 지정됐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 보호 조치에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과 비교하면 한국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물론 시장경제 원리를 훼손해서는 안 되지만 국가기간산업과 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전략적이고 제한적인 정부 개입은 국가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산업정책이 확대되는 추세 속에서 한국 정부도 외국자본의 국가기간산업 인수에 대한 심사권한을 강화하고 산업계와 함께 실효성 있는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의 전략광물 수출통제가 강화하는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대체 공급원으로서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과의 공급망 협력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국가적으로 주목해야 할 가치다.

미국이 동맹국 기업의 인수조차도 실질적으로 저지하고 자국 산업에 대한 투자로 방향을 전환한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국익과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결단력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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