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승관 건설부동산부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과 건설 카르텔 혁파를 차질 없이 이행하라.”
지난 11일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밤늦게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언론에 전달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LH 사장에게 이같이 지시했다”고 했다.
LH 혁신·건설 카르텔 혁파와와 관련한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은 이날 밤 9시가 넘은 시점에 공지됐다.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밤 9시 넘어 언론에 공개한 것은 그만큼 이 문제를 ‘국가적 비상상황’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를 마무리하고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카눈’도 큰 탈 없이 소멸하자 윤 대통령이 강조했던 건설 카르텔 혁파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사실 밤늦은 윤 대통령의 전격적인 지시사항 배경을 살펴보면 개탄스럽기 짝이 없는 LH의 조사결과 때문이다. 지난달 말 LH는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 91개 아파트 가운데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 문제가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5곳은 담당자들이 철근 누락이 경미하고 안전에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사장에게 보고조차 안 했다는 것이다. 누락된 단지는 화성남양뉴타운 B10, 평택소사벌A7, 파주운정3 A37, 고양장항A4, 익산평화 등이다. 이 중 현재 공사 중인 고양장항A4와 익산평화를 제외한 3곳은 모두 준공됐다.
이처럼 철근 누락과 전수 조사 대상에서 누락된 단지가 추가로 나오는 이유가 내부의 ‘보고 누락’ 때문이라고 한다. LH가 허술함을 드러낸 건 이뿐 아니다. 무량판 공사 아파트를 전수 조사한다면서 11개 단지를 빼 먹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총 102곳을 조사했어야 했지만 91곳만 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철근 누락 아파트는 더 나올 수도 있다. 이 사장조차도 “누락된 보고를 제3자를 통해 알게 됐다. 어떻게 LH 조직이 가장 기본적인 통계조차 발표를 안 하고 임의로 뺐는지 참담하고 실망스럽다”고 토로할 정도다. 이 사장의 입을 통해 듣게 된 LH의 기초조사와 내부통제가 이 정도라니 말문이 막힌다.
지난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해 출범한 LH는 여전한 자리 나눠 먹기와 칸막이 문화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뿌리 깊은 LH의 이권 카르텔과 먹이사슬 구조를 고려하면 아무리 정부가 반 카르텔을 외쳐도 변화는 어렵다. LH의 환골탈태 선언도 한두 번이 아니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번엔 진짜로 달라져야 한다. 추가 부실을 발견한다면 국민의 주거 안전을 위해 재시공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철저하게 임해야 한다. 국민 안전이 최우선인 해결책이 졸속에 그친다면 주거 불안을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이번 LH 사태를 통해 드러난 복잡한 이권과 비리를 근절하려는 윤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를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여론에 떠밀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 대책으로 전락하질 않길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LH도 고질적 병폐를 이번 기회에 싹 뜯어고치도록 강도 높은 조직 쇄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