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2000년대 이후 수 십조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 저출산 정책은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 기준)이란 처참한 성적표만 남겼다. 이에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대안으로 이민 확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 산하에 이민청 신설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지난 11일 전남도청에서 열린 외국인·이민제도 정책 소통 간담회에서 “외국인 인력 문제를 유연하고 체계적인 정책을 운용한다면, 지역 발전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이민 확대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냈다.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달 초 민선 8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저출산 정책의 투자가 효과가 없다고 판단이 되고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상황이 되면 차선책으로 이민 정책도 지금부터 서서히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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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우 전문인력 이민에 해당하는 ‘H1-B’비자로 매년 8만 5000명 정도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3억 4000만명인 미국 전체 인구의 0.025%에 불과한 규모다. 우리나라가 같은 비율로 전문인력 이민을 받는다면 한해 1만 3000명 안팎으로 저출산 대책과는 거리가 먼 수준이다. 실제 2070년까지 매년 1만 3000명의 전문인력이 이민을 오더라도, 우리나라 예상 감소 인구인 1400만명의 4.4%인 약 61만 1000명이 늘어나는데 그친다.
일각에선 전문인력에 대한 이민을 확대하면 국내 일자리를 위협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내국인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하면 저출산을 더욱 부추길 우려도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저출산과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면 2020년 기준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3.7세, 여자 31.3세로 10년 전과 비교해 각각 1.6세, 1.9세 증가했다. 또 25~49세 인구 중 혼인 경험은 남자는 52.9%, 여자는 67.1%로 같은기간 11.8%포인트, 10.3%포인트 감소했다. 이같이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혼인 경험 비율이 낮아지는 가장 큰 원인으론 일자리 부족이 첫손에 꼽힌다. 이런 현실에서 전문인력의 이민 확대는 자칫 우리 청년들과의 일자리 경쟁을 유발해 출산율을 더욱 떨어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 세계 선진국들이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민 확대는 우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이민 확대를 고려한다면, 그 대상 국가와 인원, 연령, 계층 등을 면밀하게 따져 구체적인 목표부터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