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맞닥뜨린 미래는 밝지만은 않다. 가장 잘 나간다는 반도체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미래 먹거리로 꼽고 공을 들이고 있지만 글로벌 파운드리 최강자인 대만 TSMC의 벽은 높기만 하다.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제품 양산이라는 승부수를 띄웠으나 아직 고객 확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애플·AMD 등 큰 손들은 여전히 TSMC에 독점적으로 물량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이 인텔을 앞세워 파운드리 시장 탈환에 나선 점도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신사업 방향 설정, 대내외 위기 타개, 향후 지배구조 개편 등 삼성이 떠안고 있는 각종 숙제에 발 빠르게 대응하려면 이재용 부회장의 복권을 계기로 하루빨리 그룹 내 ‘컨트롤타워’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계를 중심으로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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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성은 사업지원(삼성전자), 금융경쟁력제고(삼성생명), EPC(설계·조달·시공)경쟁력강화(삼성물산) 등 사업부문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그룹을 이끌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 결정권이나 실행 권한을 가진 조직이 아닌 만큼 과거 미래전략실과 비교해 효율성 면에서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그간 이 부회장의 리더십 공백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혀오긴 했지만 산업 대전환기 삼성은 혁신 측면에서 발 빠른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일각에선 한시적인 계열사별 각자 도생 체제 자체가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지난 5월 1조원 이상 규모의 미국 제4 이동통신 사업자 디시 네트워크의 대규모 통신장비 공급사 선정, 같은 달 삼성전자와 미국 인텔 간 협력체제 구축, 지난달 세계 최초의 GAA 기술 적용 3나노 파운드리 제품 생산 등 굵직굵직한 성과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이 부회장의 가석방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더욱이 2017년 초 미국 전장기업 하만 이후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M&A) 계보는 명맥이 끊긴 상태다. 올 초 삼성전자 측은 반도체·모바일·가전 등 전 사업부문에서 ‘빅딜’을 예고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성과는 전무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은 반도체와 가전, 금융 등 안 다루는 분야가 없을 정도”라며 “이들 분야 모두 상호 연결성을 키워 발전시켜야 할 사업들인 만큼 이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더 나아가 글로벌 환경에 맞춰 정책을 검토하고 실현하는 구심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룹 경영 차원에서 방향성 제시할 확실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이 4세 경영 승계를 포기한 만큼 향후 이사회와 전문 경영인 중심의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뒤따르려면 그룹 컨트롤타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재계 전반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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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삼성 컨트롤타워의 핵심을 ‘권한과 책임의 일치’로 꼽는다. 구조조정본부·미래전략실 등 과거 컨트롤타워 모두 권한만 비대했지 책임은 지지 않는 불투명한 구조였다는 점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관료는 “컨트롤타워에 정답은 없다”며 “(주)LG와 같은 지주회사가 과거에는 일반적 표준이었지만, 삼성처럼 지주사가 없는 곳은 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형태로든, 그룹 전체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에 따른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그게 컨트롤타워의 핵심”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컨트롤타워를 복원하되 신사업 추진 등으로 기능을 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과 같은 거대 기업의 경우 투자 전략을 담당하고 분석하는 확실한 역할 및 기능을 담당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황용식 교수는 “컨트롤타워가 재건되면 가장 먼저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할 것”이라며 “10년, 20년 후를 대비할 미래 먹거리를 일단 제시해 앞으로 어떤 분야의 선도기업 될 건 지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