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각]①지성인 4人이 말하는 '집밥의 모든 것'

김무연 기자I 2021.04.28 05:30:00

위대한 생각 1주년 특집, 지성인 연합강연 ''집밥포럼''
임규태 박사·문정훈 교수 등 전문가 4인 출연
코로나19 이후 집밥 양상 크게 바뀌어
집밥의 역사, 최신 집밥 트렌드, 배달, 혼술 문화 강연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함지현 전재욱 유현욱 김범준 기자] 급격한 산업화와 이에 따른 맞벌이로 사라졌던 ‘집밥’이 다시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외식이 어려워지자 흩어졌던 가족은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맛있는 한 끼를 꿈꾸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 출생자)부터 ‘삼식이’라 구박받던 중년 남성도 요리에 뛰어들었다. 바야흐로 ‘집밥의 시대’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KG하모니홀에서 이데일리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 ‘위대한 생각’ 방송 1주년을 맞아 ‘제 1회 이데일리 집밥포럼’이 열렸다. ‘역사 덕후’ 임규태 공학박사,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 박태희 우아한형제들 홍보실장, 홍준의 한국주류수입협회 홍보고문 등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 4명이 참가해 집밥에 얽힌 역사부터 최근 산업 트렌드와 관련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제1회 이데일리 집밥 포럼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열렸다. 임규태 박사가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 한국 식탁을 지배하는 매운맛… 세계로 나아갈 때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임규태 박사는 매운맛을 주제로 집밥의 역사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매운맛은 중국, 태국, 멕시코에도 강렬하고 얼얼한 매운맛과는 결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매운맛은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는 자산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고추는 어떻게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왔을까. 1346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면서 유럽은 흑사병의 특효약이라 여겨졌던 향신료 ‘육두구’를 찾기에 분주했다. 당시 육두구 산지였던 동남아시아로의 무역로는 오스만제국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야 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된 이유다.

수많은 탐험가 중 한 명이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정작 탐험의 목적이었던 육두구를 찾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육두구 대신 고추를 들여와 유럽에 전파했다. 유럽 선교사는 고추를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 등으로 날랐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후 고추가 ‘남만초’란 이름으로 유입됐고 곧 중요한 향신료가 됐다.

한국에서 자란 고추의 특성
임 박사는 “고추가 한국에서 자리 잡으면서 다른 지역과는 차별적인 매운맛으로 진화했다”고 했다. 한국 토양에서 자란 고추는 다른 지역의 고추보다 단맛은 3배 이상 강한 반면 매운 맛은 낮은 편이다. 여기에 음식 본연의 맛을 살리기보다는 푹 끓이거나 발효하는 조리법 특성상 독특한 매운맛을 낼 수 있단 설명이다.

실제로 음식 만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본 만화 ‘맛의 달인’에서도 주인공들은 “매운맛밖에 안 느껴지는데 먹을수록 숨겨진 맛이 느껴진다”라는 등 한국의 매운맛을 특별하다고 평가했다. “임 박사는 매일 집밥으로 접하는 매운맛은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음식 산업의 발전에도 도움을 준다”라면서 “한국의 매운맛을 퍼뜨리기 위한 방안을 머리를 맞대 고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1회 이데일리 집밥 포럼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열렸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가 ‘요즘 집밥 : 코로나가 불러온 집밥시대의 특이점’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 집밥 2.0 시대… 키워드는 신선함과 친환경

문정훈 교수는 집밥의 진화를 강조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맛있는 간편식을 찾는 움직임이 증가하며 파우치 형태의 간편식이 등장했다. 2017년 이후에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비롯해 수많은 스타 셰프들이 TV프로그램과 유튜브에 얼굴을 비추면서 직접 집밥을 하고자 하는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문 교수는 이 시기를 가리켜 ‘집밥 1.0’ 시대라 명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본격화하면서 기존 집밥 시장이 소비자들의 수요와 니즈를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조리가 된 간이 센 파우치 형태의 간편식은 물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문 교수는 “한국인은 찌개를 먹더라도 야채를 넣어서 먹어야 하는데 기존 파우치 형태의 간편식은 이런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게 한계가 있었다”라며 “신선한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가 나타나자 파우치 형태의 간편식 대신 밀키트가 집밥 대세가 됐다”고 짚었다. 집밥 2.0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간편식 증가세
문 교수는 밀키트를 △신선식품을 기반으로 하는 식재료(가공과 양념도 포함) △전(前) 처리가 필요없이 바로 요리할 수 있는 포장 △요리를 완성하는 레시피를 담은 제품으로 정의했다. 밀키트는 재료의 준비와 손질 과정을 생략하고 볶고, 삶고, 굽는 조리 행동만으로 갓 조리한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집밥 2.0을 이끄는 대표 상품이 됐다는 설명이다.

밀키트가 대세가 되면서 바다 단백질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 교수는 “수산물은 손질이 까다로워 선택을 꺼리곤 하는데 밀키트는 이런 장벽을 허물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수산물 간편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동안 전년대비 육류 가공품 소비가 15% 늘어나는 동안 수산물 가공품 소비는 10% 늘었다.

새벽 배송 일상화도 집밥 2.0 시대를 견인한 요소다.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성장한 새벽 배송의 지난해 매출 신장률을 살펴보면 가공식품보다 신선식품 쪽의 신장률이 더 컸다.

제1회 이데일리 집밥 포럼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열렸다. 박태희 우아한형제들 홍보실장이 ‘지금은 배달시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 우리는 원래 배달의 민족이었다

“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 1768년 7월 조선 후기 학자 황윤석이 저술한 ‘이재난고’에 등장한 우리나라 최초 배달 음식에 대한 기록이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 등장 이전부터 우리나라는 유구한 배달의 역사를 자랑해 왔다.

박태희 우아한형제들 홍보실장은 집밥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우리나라 배달 음식의 역사를 되짚었다. 냉면과 더불어 유명한 배달음식은 ‘효종갱’이다. 효종갱은 배추속대·콩나물·쇠갈비 등을 토장과 함께 끓인 일종의 해장국으로 양반들이 즐겨 먹었다. 1906년 일간신문 ‘만세보’에는 고급 요릿집 ‘명월관’의 출장 요리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배달 음식 수요가 늘어나고, 배달이 대부분 배달 앱으로 주문하면서 배달 앱들의 성장세도 매우 가팔랐다. 국내 1위 배달 앱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의 거래액은 지난 2016년 1조 8000억원이던 거래액은 2017년 3조원을 돌파했다. 2018년 5조 2000억원, 2019년 8조 8000억원에서 지난해 15조 7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배달의민족 앱 내 거래액 증가 추이
다만 박 실장은 배민의 성장을 단순히 배달 음식 수요 증가에 따른 영향으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서비스를 앱에 추가해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개발 경쟁력’과, 사람들이 개발한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 경쟁력’이 현재의 배민을 만든 원동력이라고 했다.

배민은 특히 마케팅 경쟁력을 강조했다. 배민은 사업 초기부터 배달은 ‘막내’들이 시킨다는 점에 착안해 타겟층을 막내로 설정하고 ‘깨우면 안대’ 안대 등 재밌는 굿즈를 내놓으면서 인기를 끌었다. 2019년에 진출한 베트남에서도 베트남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금은보화를 부르는 가방’의 뜻을 지닌 ‘Tui Ba Gang(투이바강)’을 적은 에코백을 만드는 등 현지화된 마케팅 전략을 선보였다.

박 실장은 향후 배달앱 산업이 끊임없이 진화하리라 전망했다. 현재 배달 앱은 식당과 고객을 연결하는 중개 역할에 그쳤지만, 앞으로는 배달 앱이 배달까지 나서는 모델이 접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실장은 “배달 앱은 식당과 사용자, 배달을 하는 라이더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어 만족스러운 정책을 만들기 어렵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길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제1회 이데일리 집밥 포럼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열렸다. 홍준의 시그니처 대표가 ‘홈술, 혼술’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 코로나로 바뀐 주류문화의 3요소 -홍준의 한국주류수입협회 홍보고문 : 홈술, 혼술

코로나19 팬데믹은 집밥 문화 뿐만 아니라 음주 문화도 크게 바꿨다. 홍준의 한국주류수입협회 홍보고문은 술 마시는 장소와 상황, 상대 등 3가지 요소가 특히 큰 변화를 겪었다고 짚었다.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설문조사에 따르면 술을 즐기는 ‘장소’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주점·호프(82.4%) △식당·카페(78.9%)에서, 이후 △자신의 집(92.9%) △지인의 집(62.9%) △식당(35.8%)으로 변화했다. 술 마시는 상황 역시 ‘혼자 있을 때(70%)’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음주 상대 역시 ‘혼자(81.9%)’ 마시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이후 바뀐 술 문화
홈술 문화의 확산으로 기존 소주와 맥주가 주도하던 주류 시장의 판도도 뒤바뀌었다.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이뤄낸 것은 와인이다. 지난해 연간 국내 와인 판매량이 전년 대비 약 27% 증가했다. 편의점에서는 올해 1월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상위 10개 품목에서도 와인(1위)이 위스키(2위), 소주(6위), 맥주(9위)를 앞질렀다.

코로나19에 따른 어려운 경제 상황이나 답답한 사회 여건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소비로 해소하는 ‘보상심리’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고가의 싱글몰트 위스키 판매량도 급증했다. 하나의 원액으로만 생산하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여러 원액을 섞은 일반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지난해 싱글몰트 위스키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59% 성장했다.

집에서 혼자 술을 즐기는 고객을 위한 ‘소용량’ 주류의 판매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여기에 집밥을 스스로 요리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처럼 ‘홈테일’(집에서 칵테일)과 ‘홈텐딩’(집에서 바텐딩) 바람도 불고 있다. 밀키트에 이어 ‘주(酒)키트’라는 신조어도 새롭게 등장했다.

☆ 임규태 박사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 문정훈 교수

전(前)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전 SIAL Paris 혁신식품상 심사위원 역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로 재직 중.

☆ 박태희 실장

중앙일보 기자로 22년 근무.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저널리즘 석사. 우아한형제들 홍보실장

☆ 홍준의 고문

전(前)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홍보 상무. 시그니처 대표. 한국주류수입협회 홍보고문.

◇‘위대한 생각’은…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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