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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75년 분단 세월만큼 변화한 사회상이 또 녹아내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사실 북한은 한때 추석이 사라진 것이 있다. “봉건자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1967년 5월 김일석 주석이 교시를 내리면서 한식, 단오절과 함께 사라졌다. 당시 유일하게 남은 민속명절은 양력 설 하나였다. 이후 추석은 1972년 남북대화가 시작되면서 부분적으로 부활했다. 이산가족들이 북한에 남겨둔 조상묘의 안부를 물어오면서 성묘를 허용하는 등 민속명절을 부분적으로 부활시켰다.
북한이 추석을 민족명절로 규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한 건 1989년이다.
대표적인 것이 추석은 같지만, 남측은 추석 전후를 묵어 3일을 쉬는 한편, 북측은 기본적으로 추석 당일만 쉰다는 것이다. 이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 ‘민족대이동’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내에서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여행증 발급이 필요하고 교통사정상 이동시간이 오래 걸려 당일치기로는 어렵다. 따라서 ‘고향 집’에 가고 싶은 이들은 3일 연휴가 보장되는 음력설에 귀향을 노린다.
대신 추석을 되면 사람들은 제사음식 등을 들고 인근 산으로 오른다. 북한은 사람이 죽으면 인근 산으로 가서 매장을 하는 장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산에 무덤이 너무 많이 생기면서 혼란이 발생하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화장을 지시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같은 화장문화가 전파되면서 납골당 등에서 조용히 추모를 하고 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1985년까지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추석 당일만 쉬었다. 이후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추석을 시작으로 이틀 연휴였으며 1989년부터 현재와 같은 방식의 연휴가 적용됐다. 2014년부터는 개천절이나 일요일과 공휴일이 겹칠 경우, 이다음으로 오는 첫 평일까지 공휴일로 취급하게 됐다. 사회와 경제가 발전할수록 ‘일하는 것’만큼 ‘쉬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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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날 전을 많이 먹는 우리와 달리 북한에서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평양에서는 찹쌀가루와 길금(엿기름)가루 등을 반죽해 기름에 지져 먹는 ‘노치’라는 명절대표음식이 있다. 북한 월간지 ‘조국’은 “노치는 떡 같기도 하고 지짐 같기도 하고 과자 같기도 한 단 음식”이라며 “특히 평양 지방에서 잘 만들어 먹은 독특하고 자랑할만한 민족당과”라고 전했다. 개성에서는 닭고기 국물에 토란을 넣어 만든 ‘토란탕’을 먹는다.
북한의 추석 민속놀이도 남쪽과 다를 게 없다. 여성의 경우 그네뛰기, 남성들은 씨름과 활쏘기 등을 한다고 한다. 특히 북한 최고 권위의 대회인 ‘대황소상 전국 민족씨름경기대회’이 추석을 전후해 진행된다. 밤에는 보름달을 보며 마음 속 소원을 말하고 풍년을 기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른 모습도 있다. 바로 먼저 간 ‘혁명선배들’과 동지들을 추억하는 것이다. 대성산혁명열사릉·신미리애국열사릉·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등 국립묘지와 각 지역의 인민군열사묘에 화환을 바치는 행사가 진행되는데 이에 참석하는 이들은 노동당과 선택받은 인민이라 매우 영광스러운 행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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