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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 미술평론가] 지난 5월 30일, 역사상 최초로 민간 유인우주선이 우주로 날아올랐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49)가 설립한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건’이다. 민간 우주 개발의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 우주선의 발사는, 우주 개발은 국가의 영역이지 민간의 영역이 될 수 없다는 통념을 통쾌하게 파괴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머스크가 우주 개발에 나선 2000년대 초. 우주 개발은 천문학적인 투자와 국가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념이었다. 그래서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우주 개발에 꼭 그토록 많은 돈이 들어야 하는지 분석은 해봤는가”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고, 마침내 ‘저렴한’ 비용으로 혁신적인 로켓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리며 일군 이 성과는 한마디로 ‘비판적 사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우주 개발 비용, 분석은 해봤나”
비판적 사고를 하는 이들은 결코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편견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비판적 사고는 단순히 오류를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가는 목적의식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창조적인 문제 해결 능력의 토대가 돼준다. 이 비판적 사고의 위대한 성취를 보여준 대표적인 미술이 고대 그리스의 미술, 특히 ‘그리스 조각’이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은 실제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사실적인 표현으로 이름이 높다. 물론 이 재현은 단순한 사실 묘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조각은 사실 묘사에 더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잘생긴 사람을 보면 “그리스 조각 같다”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이상적 아름다움과 별개로, 고대 그리스 미술은 어쨌거나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고도의 사실적 재현에 성공한 미술이다.
그리스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의 원작을 로마시대에 모각한 ‘머리띠를 두르는 남자’(디아두메노스·서기 69~96년경)를 보자. 운동경기에서 이긴 남자가 자신의 승리를 기념해 머리에 띠를 두르는 장면을 포착한 작품이다. 균형 잡힌 몸매에 당당하고 여유로운 포즈까지 진정 멋진 우승자가 우리 눈앞에서 승리의 순간을 만끽하는 듯 서 있다. 고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완벽한 인체의 표현이 그리스에서 이처럼 멋들어지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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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이 대리석으로 본격적인 인체입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세기 중엽부터였다. 직육면체의 돌 위에 모눈을 만들고 앞·뒤·좌·우의 입상을 그려 네 면에서 쪼아 들어가는 이집트의 조각 제작방식은, 그리스 대리석 조각의 발달에 큰 기여를 했다. 이 기술을 수입한 그리스는 처음에는 이집트 조각과 유사한 (그러나 성취도는 다소 떨어지는) 인체입상을 제작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진짜 사람이 서 있는 듯한, 매우 박진감 넘치는 형상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렇게 완벽한 사실적인 표현은 이집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성취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0년이었다.
기원전 5세기 중엽, 그리스 미술의 사실주의는 그렇게 만개했다. 경직된 이집트 조각과 달리 자연스러운 인체의 동작이 나오고, 어색하던 근육이 보디빌더처럼 탄력을 갖게 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성장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리스 각성, 보수적·인습적인 전통 타파
그러면 그리스는 어떻게 다른 고대 문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완벽한 사실주의의 미학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는 전적으로 그리스 특유의 비판적 사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판적 사고를 낳은 것이 ‘그리스의 각성’(Greek Awakening)이다. 그리스의 각성은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난 이례적인 혁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혁신을 가능하게 한 기본조건은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은 무엇보다 인간의 관심사와 능력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은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는 태도’와 ‘비종교적이고 세속적인 주제에 더 큰 지적·학문적 관심을 두는 태도’를 진작시켰다. 바로 이 혁신적 사고로 그리스는 눈앞의 현상을 부단히 재검증하고 모든 고대 문명 일반에 강고히 뿌리내린 보수적이고 인습적인 전통을 타파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각성은 과학과 수학·철학·역사 등 많은 분야에서 유럽 문명의 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밑천이 됐다.
그리스의 각성은 또한 그리스 미술이 그 어느 지역의 미술보다 사실성을 중시하고 그와 관련한 표현 능력을 고도로 발달시키게끔 만들었다. 하나의 양식이 정해지면 오랜 세월 이를 배타적으로 유지하려는 특성을 보였던 다른 고대 문명의 미술과 달리, 비판적 사고의 영향 아래 있던 그리스 미술에는 표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그것이 논리적으로 수긍되면 이에 맞춰 표현을 즉각 수정하는 태도가 자리 잡게 된다. ‘비판-수정-비판-수정’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표현은 점점 더 사실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미술도 인류 최초로 완벽한 사실주의적 성취를 활짝 꽃피웠다.
비판적 사고는 어느 분야에서든 매우 중요한 혁신의 동력이다. 머스크의 성취로 되돌아가 보자.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유추해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제일원리’에 입각해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개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제일원리는 ‘다른 명제나 가정으로 추론할 수 없는 가장 기초적인 명제나 가정’을 말한다. 한마디로 ‘현상의 배후에서 현상을 지배하는 근본원리’다. 머스크는 자신에게 익숙한 문제든 낯선 문제든 결코 함부로 추측하거나 미뤄 짐작하지 않는다. 항상 가장 기초적인 원칙과 원리로 돌아가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철저한 비판적 사고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것은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꿈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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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비난할 때…냉철히 계산했던 머스크
머스크가 로켓의 개발비를 파악할 때 전문가의 말이나 기존의 제품가격만 보고 유추했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거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로켓에 어떤 부품이 들어가는지 낱낱이 파악했고, 그 원자재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또 낱낱이 파악했다. 이 끈질기고 집요한 분석의 결과, 로켓의 원자재 단가가 로켓 가격의 2%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렴한 비용으로 로켓 제작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 추진체를 회수해 재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더해 비용을 대폭 줄였다. 남들은 미쳤다고 한 그 순간 그는 매우 냉철하게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주영(1915∼2011)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어록 가운데 “이봐, 해봤어?”라는 말이 있다. 2015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월간지 ‘재계 인사이트’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인의 최고 어록’으로 꼽힌 말이다. 이 말은 실천의 중요성을 나타낸 말이기도 하지만, 고정관념에 안주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라는 요청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사람들은 이처럼 비판적 사고에 능하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들은 전통으로 내려온 양식에 안주하지 않고 비판적인 사고로 사실주의 미술의 위대한 성취를 이뤘다. 그들은 조각을 인체와 끝없이 비교하며 ‘비판-수정-비판-수정’의 성찰적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오늘날 서양의 수많은 미술관에는 사실적인 미술작품이 그득하게 됐고, 그 양식은 세계로 퍼져나가 가장 보편적인 미술양식이 됐다.
※ 폴리클레이토스 Polykleitos. 기원전 5세기 후반에 활약한 고대 그리스 조각가다. 청동조각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콘트라포스토(한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싣고 다른 쪽 다리는 편하게 두는 자세)를 자유롭게 구사해 이전까지 엄격하게 지켜야 했던 정면 자세의 전통을 벗겨냈다. 인체구성을 머리와 팔 길이 기준으로 나눠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표준을 처음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7등신’. 입상에서 머리가 전신의 7분의 1이 될 때 가장 아름답다는 이상상이다. 이 파격을 토대로 인체 각부의 수려한 비례를 수적으로 산출한 ‘카논’을 저술하기도 했다. 실제 조각에선 비례 외에도 유기적·율동적인 표현을 입힌 인체상을 깎아냈는데, 이는 이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조각의 규범’이 됐다. 그의 원작은 남아 있지 않지만 로마시대에 제작한 모각은 여러 점 전해진다. 원작 ‘영웅 아킬레우스 상’과 ‘아폴로 상’을 각각 본뜬 것으로 추정하는 ‘머리띠를 두르는 남자’(디아두메노스), ‘창을 든 청년’(도리포로스)은 절정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