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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저커버그가 못 나오는 이유

김상헌 기자I 2019.04.22 06:00:00
[이데일리 김상헌 산업 에디터]5년 전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위치측정기술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한 벤처사업가 이모씨(31)는 요즘 큰 고민에 빠져 있다. 자본금 1억원을 들고 시작한 회사는 기술력을 앞세워 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2차례 증자를 하면서 자신의 지분율은 60%에서 20%대로 크게 줄었다. 아직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해 올해 중에 1번 더 증자를 생각중인데 그렇게 되면 지분이 10%대 중반으로 떨어져 경영권을 내줘야 할 판이다.

이같은 사례는 벤처업계에서는 흔한 이야기다. 창업 후 2~3년 안에 찾아오는 고비를 잘 넘긴다고 해도 또 다른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경영권 리스크다. 자금이 필요해 증자를 2~3번만 해도 최대주주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고, 회사에서 밀려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페이스북 창업자, 18% 지분으로 57% 의결권 가져

마침 정부가 최근 들어 대학생 등 젊은이들에게 벤처창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실제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해 창업환경을 조성하고, 기반조성에 파격적 재정투입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한가지 빠진 게 있다. 바로 차등의결권 도입이다. 벤처업계에서는 창업열풍을 불러오고, 벤처창업가들에게 확실하게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등의결권 도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등의결권은 대주주 주식 1주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을 보호, 강화하는 장치다. 최근에는 단기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펀드 등의 공격을 막고 기업을 안정적으로 경영하는데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미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18%의 지분으로 57%의 의결권을 갖는다. 프랑스에서는 주식을 2년 이상 보유하면 1주에 2표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도 7.3%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의결권 기준으로는 지분비율이 40%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차등의결권 도입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는 벤처기업이 기업가치가 1조원에 도달할 때까지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추진 중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정해 차등의결권을 적용하는 방안을 엄격한 필요조건 아래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열심히 일하면 국가에서 지켜준다’는 믿음 줘야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벤처업계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구체적인 도입 일정이 없는데다 너무 엄격한 조건을 적용하면 실제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규제 문제만 해도 역대 정권마다 “전봇대를 뽑겠다”, “손톱 밑 가시를 빼주겠다”며 큰 소리를 쳤지만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없다고 강조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역동성이 사라졌다.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말도 쑥 들어갔다. 젊은이들의 꿈을 방치한채 말로만 벤처창업을 외치면 정부가 그토록 바라는 혁신성장의 길은 요원하다. ‘위험이 기꺼이 도전하는 나라’, ‘성공을 거뒀을 때 큰 보상이 따라오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차등의결권 도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열심히 일하면 국가에서 보호해준다’는 믿음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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