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도 한때는 대중음악…살아 뛰는 내가 곧 전통"

장병호 기자I 2018.07.17 06:00:00

국악계 ''파격의 아이콘'' 경기소리꾼 이희문
31일 母 고주랑 명창과 ''사제동행'' 한 무대
"전통은 박제 아닌 살아움직이는 것
어깨 들썩 ''흥겨운 잔치'' 놀러오세요"

경기소리꾼 이희문의 취향은 대중적이다. 그는 “음악은 헤비메탈을 제외하면 가리지 않고 듣는다”며 “어릴 적엔 민해경, 마돈나, 마이클 잭슨을 좋아했다“고 말했다(사진=마포문화재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경기소리꾼 이희문(42)은 국악계의 ‘파격의 아이콘’이다. 한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가발에 짙은 메이크업을 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우리 소리를 구성지게 부른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전국민요경창대회 종합부문 대통령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전통예술부문 수상 등의 타이틀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오는 31일 어머니 고주랑 명창과의 공연을 준비 중인 이희문을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곧 전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통에 대한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전통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지 박제된 것이 아니다”라는 거다. 그는 “내가 하는 경기민요도 과거에는 대중적인 음악이었다”며 “내가 만드는 음악이 나중에는 전통이 되는 만큼 지금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희문은 공연마다 독특한 콘셉트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악인이 되기 전 그의 꿈은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다. 그는 “전통공연을 보면 예전의 것을 그대로 하려는 1차원적이고 평면적인 느낌이 있다”며 “전통을 잘 모르는 이들이 국악을 친숙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일종의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공연마다 명확한 콘셉트를 가져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어머니와 함께하는 무대도 색다른 콘셉트로 꾸민다. 마포문화재단이 기획한 ‘2018 마포국악 페스티벌’에 초청돼 ‘사제동행’이라는 제목으로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공연한다. 그동안 이희문의 공연에 고주랑 명창이 게스트로 출연한 적은 있지만 함께 무대를 꾸미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제목처럼 경기소리를 전수한 스승 이춘희 명창과 한 무대에 서려 했으나 일정 문제로 또 다른 스승인 어머니와 함께하게 됐다. 이희문은 “어머니가 무대에 서는 것은 오랜만이라 많이 긴장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공연 콘셉트는 ‘잔치’. 옛날 동네에서 어르신을 모시고 함께 즐기던 마을잔치를 무대에 재현할 예정이다. 이희문은 “재작년 어머니 칠순 때 씽씽을 비롯한 동료들의 도움으로 손님들과 함께 흥겨운 잔치를 펼쳤는데 매우 재미있었다”며 “이번 공연도 관객이 마치 잔칫집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무대를 꾸미고자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이희문과 3명의 스승인 이춘희 명창, 현대무용가 안은미, 어머니 고주랑 명창(사진=장민경, 이희문 제공).


이희문에게는 세 명의 스승이 있다. 어릴 적부터 소리를 접하게 해준 어머니 고주랑 명창과 경기소리를 사사한 이춘희 명창, 그리고 예술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한 현대무용가 안은미다. 이희문은 “어머니는 물심양면으로 믿어주고 이춘희 선생님은 전통에서 나를 믿어준다면 안은미 선생님은 예술에서의 무한한 자유를 가능하게 해준다”며 “세 분의 믿음이 있어서 이렇게 난리를 치며 활동할 수 있다”고 웃었다.

특히 안은미와의 만남은 이희문의 활동에 큰 전환점이 됐다. 인연의 시작은 2007년 초연한 ‘바리-이승편’. 이희문은 바리공주 역을 맡아 무대에 섰다. 안은미는 첫 만남 때부터 이희문에게서 여성성을 발견하고 이를 무대에 드러내보일 것을 권했다. 이희문은 “처음에는 선생님을 피해다녔지만 서른아홉이 되던 해 선생님의 이야기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며 “지금은 예술에 대해 많은 것을 의지하는 정신적인 멘토다”라고 말했다.

이희문은 지난해 민요 록 밴드 씽씽을 통해 국악이 생소한 대중에게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음악감독 장영규, 기타리스트 이태원, 드러머 이철희와 후배 소리꾼 신승태, 추다혜와 함께 만든 팀이다. 안은미를 통해 친분을 쌓은 장영규, 이태원, 이철희와 2014년 민속 굿을 소재로 한 공연 ‘쾌’를 올린 것이 씽씽의 시작이 됐다.

“즐겁게 공연을 해보자”며 모인 씽씽은 2015년 홍대 앞 클럽 ‘곱창전골’에서 첫 무대를 가진 뒤 여러 차례 공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영상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지금도 씽씽은 음악 외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오로지 공연으로만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희문은 “CF 섭외도 들어와서 많이 놀랐다”며 “씽씽은 우리가 즐겁기 위해 모인 팀인 만큼 음악에만 집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악인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배운다. 이희문도 어릴 적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꾼이 될 생각은 없었다.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일하는 걸 꿈꾸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꿈을 바꿔 일본 도쿄에서 유학도 다녀왔다. 그러나 20대 후반 어머니의 공연에서 소리를 따라 하는 것을 본 이춘희 명창이 소리꾼의 길을 권해 국악인이 됐다.

이희문은 자신처럼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후배 국악인에게 “기본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내가 경기민요 이수자, 대통령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괜히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동안 기본을 닦는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은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1시간 반 남짓한 대화를 마친 뒤 이희문은 동대문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제동행’ 공연에 쓸 가발을 찾아보러 갑니다. 새로 나온 게 뭐가 있나 보려고요.” 그가 입은 티셔츠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희문은 “경기소리는 소리를 동글동글하게 해야 해서 목이 쉬면 쉽게 할 수 없다”며 “듣는 사람에게는 귀에 편한 ‘미혹적인 음악’이지만 소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 힘든 음악이다”라고 말했다(사진=마포문화재단).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