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큼 여자들이 럭키스트라이크를 안 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힐) “담뱃갑 색을 무난한 걸로 바꿔 보시지요. 아무 옷에나 어울리는 것으로”(버네이즈). “이미 담뱃갑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썼소. 그런데 또 바꾸라고?”(힐) “음…. 담뱃갑 색을 바꾸지 않을 거라면 거꾸로 색을 유행시켜 보지요. 녹색이라면…”(버네이즈).
그 다음은 일사천리. 버네이즈는 곧바로 뉴욕 사교계 인물을 초청해 녹색을 드레스코드로 한 ‘녹색무도회’를 연다. 또 ‘녹색패션 가을오찬’이란 행사를 꾸리고선 패션지 편집자를 초청해 녹색콩, 아스파라거스, 강낭콩수프 등 온통 녹색음식을 대접했다. 강연도 붙였다. 한 미대 학장의 등을 떠밀어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에 나타난 녹색’을 강의하게 하고 심리학자를 등장시켜 녹색이 인간심리에 미치는 의미를 설파케 했다. 참고로 2차대전 이전까지 럭키스트라이크의 포장색은 녹색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성공. ‘녹색이 다가온다’는 기사가 신문·잡지를 도배했고 아메리칸토바코는 녹색회사로, 여성이 반드시 애용해야 할 담배회사로 부상했다. ‘바이럴 마케팅’이란 용어도 없던 시절 바이럴 마케팅의 시초이자 성공사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올가을을 뒤흔들 브라운 물결’ 같은 문구는 대중을 유혹하는 강력한 도구가 됐다.
“실제로 대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을 대중으로 보는 방법이 있을 뿐.”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대중에 끼이지 못해서 언짢을 건가, 대중을 물건 취급하는 시선이 거슬릴 건가. 하지만 앙탈도 잠시 이내 수긍하는 제스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게다. 책이 펼쳐놓은 다채로운 유혹의 사례를 짚고 있노라면 대중은 그저 고도의 기술에 넘어가고 흥분하고 토라지고, 그래서 자진해서 카드를 긁고 표를 던지는 대상일 뿐이니.
18년 차 다큐멘터리 PD인 저자가 홍보, PR, 선전, 광고 등이 가진 메커니즘을 헤집었다. 제품홍보부터 정치선동까지 대중을 움직이는 다양한 ‘대중 유혹의 기술’을 늘어놓고 그 힘의 변화를 가늠했다. 중점을 둔 건 기술의 변화가 아니다. 설득자의 영향력이다. 그들은 각종 미디어를 동원해 개인영역에 침투하고, 집단을 조직화해 대중을 특정 방향으로 은밀하게 옮겨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감각이란 건 없다. 기술에 눌려 그대로 무장해제 당할테니. 여기에도 양면이 있다. 유혹하는 입장과 유혹 당하는 입장. 그래도 굳이 저자가 마음을 쓴 건 ‘어차피 속을 테지만 덜 속는 방법은 없을까’다.
▲조작인가 설득인가
광고·홍보전문가, 마케터, 정치인, 컨설턴트, 블로거, 정부기관 등. 대중에 ‘추파’를 던지는 전문가가 늘고 있다. 똑같이 손에 쥔 건? 유혹이다. 저자는 유혹을 소비자·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효과적인 PR 기술인 동시에 현실왜곡이자 대중조작이라고 봤다. 가령 이미지조작.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 경우는 아돌프 히틀러다. 그의 카리스마는 전속사진사 하인리히 호프만,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 등이 붙어 ‘창조’해낸 것이라고 했다.
현대로 넘어올수록 발달한 광고산업은 IT를 등에 업고 더욱 교묘하게 대중을 유혹한다. 하지만 IT보다 더 노련해지는 것은 설득자의 기술이다. 가상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스토리텔링, 공포와 분노를 활용하는 테크닉이 날마다 늘어간다. 초코파이 포장지에 별 상관도 없는 정(情)을 심어 팔고, 공포와 분노는 뉴스가 늘 단골로 삼는 대상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치 않다. 설득자가 기술을 쓰는 목표가 정치프로파간다나 상품구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란다. 의도했던 아니든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대중의 의식구조를 통째 바꿔놓고 세계관을 뒤흔들 수 있단 말이다. 마치 매일 먹던 집밥은 다 잊은 채 ‘백 선생’의 집밥이 새로운 키워드가 되는 것처럼.
▲인위적 마케팅? 이젠 자생적!
그렇다고 시대에 발맞춘 고도화된 기술만이 성공을 따내는 건 아니다. 전통적인 입소문이 여전히 먹힐 수 있단 말이다. 지난해 75억원 매출을 올린 허니버터칩이 결정적 예가 될 터. 마케팅은 SNS에 얹은 입소문 “품절”이 다 했다. 담당자는 되레 폭발적 수요가 생긴 제품 출시 한 달 만에 모든 마케팅 전략을 거둬들이고 광고도 하지 않는 ‘무전략의 전략’을 선택했고. 인위적 마케팅을 거둬들인 자리에 자생적 마케팅을 심은 거다. 최첨단의 21세기에 고객의 입만 바라보는 모양새가 제대로 통한 셈이다.
저자가 이쯤에서 꺼내놓은 것이 ‘좋은 PR’이다. 그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오산. 기존의 상식이나 담론에 제동을 거는 행동이 좋은 PR이란다. 쉽게 말해 ‘엑셀러레이터’보다는 ‘브레이크’라는 뜻. 완전히 멈춰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욕망’…유혹하거나 유혹당하거나
‘대중 유혹 기술’을 연구한다는 건 인간 심리와 본성을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자가 볼 때 그건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대중의 무의식이 새어나오는 순간을 어찌 포착하는가에 따라 대중을 유혹할 수도, 마케터의 유혹을 피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건 이거다. “모두 대중을 설득한다고 말하지 아무도 대중을 조작한다고 말하진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무의식은 어떻게 간파하나. 대중에게 무의식은 기억이고 상처고 욕망이니 그걸 잡아채라고 이른다. 특히 대중의 욕망을 아는 것이야말로 유혹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했다. 현재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욕구, 충족하지 못한 결핍을 그대로 방증한 것이니. 대중 입장에선 정반대로 적용할 수 있을 거다. ‘욕망을 들키지 마라. 유혹 당하기 십상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