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로 지은 보금자리 '가진 자가 더하네!'

김동욱 기자I 2012.04.09 08:23:29

오산 세교 등 미분양 나자 유주택자에게도 분양
집없는 서민 위한다더니 원칙 지켜지지 않아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09일자 1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무주택 서민들이 싼 값에 내집을 마련할 기회를 주기 위해 도입된 보금자리주택이 분양이 잘 안된다는 이유로 유주택자들에게 공급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수도권 일부 보금자리주택에서 발생한 미분양을 털기 위해 집 가진 사람에게도 청약 기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MB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도입한 것이 집 없는 서민을 위한다는 취지였고 정부의 재정과 국민주택기금이 투입된 점을 고려하면 유주택자에게 보금자리주택을 분양하는 것은 정책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들도 보금자리주택을 유주택자들에 팔아 치울 게 아니라 무주택자들의 매입 수요가 생길때까지 공공임대주택으로 보유하는 것이 당초 취지에 부합한다며 보금자리주택의 유주택자 분양을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8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LH공사는 경기도 오산 세교 택지개발지구 B-1블록 보금자리의 미분양 잔여물량 696가구에 대해 유주택자에게도 청약 기회를 주고 있다.
 
이 단지는 지난해 5월 신혼부부, 3자녀 등 특별공급 674가구, 일반공급 349가구 등 무주택 서민을 대상으로 전체 1023가구를 모집했다. 하지만 3순위까지 진행된 본청약에서 696가구가 미달됐다. 이렇게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면서 남은 물량 696가구는 주택보유 여부에 관계없이 선착순으로 분양되고 있다. 이는 전체 공급 물량 1023가구의 68% 수준. 보금자리 주택 청약 요건을 갖춘 무주택자보다 유주택자에게 더 많은 보금자리주택이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보금자리주택을 유주택자들에게도 문을 열자 속속 팔려나갔다. 4월 현재 이 단지의 계약률은 95%에 이른다. 인근 동탄2신도시와 비교하면 분양가가 400만원가량 저렴해 향후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유주택자가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아파트는 보금자리지만 택지개발지구에 지은 것이어서 등기 후 바로 팔 수 있다”며 “분양가도 저렴해 유주택자들의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여기 뿐만이 아니다. 국민임대주택을 지으려다 지난 2009년 보금자리지구로 전환된 지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임대 아파트를 짓기로 돼 있던 곳을 보금자리로 전환했지만 분양에 실패하면서 결국 유주택자들에게 문을 열어 준 것이다.
 
인천 서창2지구 8블록 보금자리는 현재 전체 공급 물량 566가구 중 231가구에 대해 유주택자 청약을 허용하는 추가 분양을 진행 중이다. 작년 10월 분양 당시만 해도 395가구가 미달됐다. 전체 물량의 70%가 선착순 물량이었던 셈이다. 이 아파트는 분양가가 3.3㎡당 760만원으로 주변 시세의 80% 수준으로 책정됐다.
 
지난달 입주를 진행한 11블록 보금자리 인근 J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지역은 보금자리 중에서도 분양가가 상당히 저렴한 편”이라며 “청약통장을 갖지 못한 무주택자들 뿐 아니라 유주택자도 꽤 분양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의정부 민락2지구 보금자리 역시 전체 공급물량 842가구 중 62%인 520가구를 같은 방식으로 선착순 분양하고 있다. 그러나 LH공사 관계자는 “주택시장 침체로 인근 집값이 많이 내려 가격메리트는 크지 않아 유주택자를 끌 만한 유인이 되지는 못한다”며 “유주택자들에게 보금자리주택이 돌아가는 물량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보금자리주택이 정책 도입 취지와 달리 유주택자에게도 공급되는 것은 보금자리주택도 현행 주택공급규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 규정에 따르면 시행자가 사업 여건 등을 고려해 선착순 분양 조건 등을 임의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미분양에 따른 LH공사의 자금 부담을 감안하더라도 국민주택기금 저리대출 특혜와 정부 재정까지 일부 투입된 보금자리주택을 유주택자들에게까지 분양하는 것은 과도한 재량권 적용이 아니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국토해양부도 LH공사의 이런 움직임에 사안별로 제동을 걸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미분양이 발생한 고양원흥지구가 대표적이다. 국토해양부는 이 지역의 미분양 물량에 대해서는 유주택자들에게 분양하지 못하게 막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고양원흥은 그린벨트를 푼 지역이고 경기만 살아나면 무주택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돼 관리하는 것이지 특별한 원칙은 없다”며 “나머지 지역은 무주택 수요가 없을 것으로 예상돼 LH가 유주택자에게 분양해도 저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보금자리주택 정책이 원칙 없이 시장 상황에 따라 변칙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국장은 “보금자리의 원칙은 집 없는 서민에게 돌아가는 것인데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며 “임대주택을 말로만 늘리겠다고 하지 말고 차라리 잔여물량은 임대주택으로 돌리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용어설명>
보금자리주택 : 공공이 국가의 재정과 기금 지원을 받아 주변 시세의 80% 수준으로 짓는 분양주택, 임대주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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