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북, 외무성 대신 국방위가 전면에

경향닷컴 기자I 2011.06.03 07:17:56

협상파 입지 줄어들고 강경파 목소리 커진 듯
예고 없는 선조치 늘어.. 행보 예측 어려워져

[경향닷컴 제공] 북한은 연초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남북 당국자회담을 열자”고 제안한 뒤 4개월 넘게 이어오던 대화 공세를 5월 말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줄곧 성의를 가져왔다”고 한 말은 ‘그동안 이렇게 해도 안됐으니 선(先)남북관계 얘기는 그만해달라’는 취지였음이 읽힌다.

최근 북한의 행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외무성에서 눈에 띄는 담화나 성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 외무성은 지난해 1월11일 “조선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올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당사국들에 정중히 제의한다”고 한 대변인 성명 이후 이렇다 할 제안을 내놓지 않았다. 올해 나온 외무성 담화는 “전제조건이나 대화 순서를 내세우지 말아야”(1월26일), “대화도 대결도 다 준비돼 있다”(3월1일) 이후 거의 자취를 감췄다. 4월11일 우다웨이-김계관 베이징 회동 이후 남북 비핵화 회담에 응하겠다는 외무성 입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두 달 가까이 침묵 상태다.

현지 지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 현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일 공개한 사진. | 연합뉴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국방위와 조평통이다. 조평통은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의 ‘베를린 발언’을 이틀 만에 ‘도전적 망발’로 일축했다. 북·중 정상회담 직후 국방위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내고 이틀 뒤 비밀접촉 내용까지 공개했다. 국방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전면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이는 2009년 4월 북한 헌법 개정으로 국방위의 위상이 강화된 것과도 관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북관계 경색과 무관치 않다. “남북 대결구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외무성으로 대표되는 협상파의 입지가 넓지 않은 것 같다”(정부 소식통)는 분석이다.

이는 북한이 최근 비밀접촉 폭로 과정에서 거명한 사람(김태효·김천식·홍창화·현인택·원세훈·임태희·이명박) 중에 외교부 인사가 한 명도 없는 점과 묘하게 통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이 청와대, 국정원, 통일부를 모두 비난했지만 거기 외교부는 없다”며 “역설적으로 외무성-외교부 라인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조병제 외교부 대변인은 2일 “북한이 핵문제 해결에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면서 성의 있는 자세로 남북대화에도 임하고 양자·다자대화, 궁극적으로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는 프로세스가 이뤄지기를 여전히 희망한다”고 밝혔다. 6자회담 틀 내의 남북 비핵화회담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둔 것이다.

또한 빠르게 방향을 트는 북한의 행동 패턴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11월 아주 짧은 예고 후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고, 이번에도 국방위 대변인 성명 발표 후 순식간에 비밀접촉 내용을 공개했다. 정책기조 변화의 주기가 아주 짧아졌다는 느낌이다. 연초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남북대화로 방향을 밝혔을 때만 해도 그 기조가 반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됐다. 북한이 과거에 대화나 대결이라는 방향을 정하면 최소 6개월 이상 그 방향으로 갔던 것에 비하면 달라진 모습이다.

정부 소식통은 “외무성이나 협상파들이 뒤로 물러나고 군부가 나서서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 있지 않나 한다”고 말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한이 김정일 위원장이 쓰러진 뒤 차분하게 장기적 고려를 하기보다 시간에 쫓긴다는 인상을 주면서 외려 협상력을 낮추는 식으로 행동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의 행동이 빨리 변하는 것이나, 외무성이 잘 안보이는 것은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는 데 큰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당국자, 북한 전문가 어느 누구도 북한의 다음 행보를 섣불리 예상하지 못하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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